단테일기

벅찬 일과, "전략기획"의 이 버거움...

단테, 2009. 9. 22. 12:32
 

 

 

무지막지한 업무의 할당, 그럼에도 꾸역꾸역 제 할일들을 찾아서 해내야만 하는 신세이기도 한...

 

- 무언가 새로운 혹은 색다른 시도 내지 계기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못지않은 "여건" 역시

  당장 매우 절실하게도 필요함을 느끼게 되는 요즘, (특히, 체력과 건강 또한 아주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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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겨레 몇토막 :

     

 

 

 

[사설] ‘엠비 코드’에 맞춘 총리 후보자의 현안 인식  (한겨레, 9/22)

 

 

[한겨레]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본 소감은 씁쓸하다. 정 후보자가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너무 빨리 '엠비 코드'에 맞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히 용산참사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들에 대해 정부의 기존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 후보자의 총리 지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받은 주된 이유는 그가 현 정부의 편향된 사고나 정책을 바로잡는 '균형자' 구실을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상징적 시험대가 바로 용산참사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처음부터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서면답변을 통해 용산참사 원인에 대해 "농성자들이 투척한 화염병 때문"이라고 밝혔다. 3000쪽 분량의 수사기록 미공개에 대해서도 "화재사고 입증과 관련이 없는 서류들"이라고 검찰 쪽 입장을 되뇌었다. 그의 답변을 보면 과연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공권력 남용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왔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가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정 후보자가 벌써부터 별다른 고민 없이 공무원들이 써주는 원고나 그대로 읽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 후보자는 '규제완화·개방확대'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바른 방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대강 살리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그동안 자신이 강하게 비판해온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대부분 용인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총리가 정부 정책을 두고 청와대 등과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입장 변경'은 그의 총리 지명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새삼 묻게 만든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사업에 대해서도 정 후보자는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고 본다. 자족기능이 부족한 것 같다"며 원안 수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감세정책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도, "기조를 다시 바꾸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고려할 때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은 세종시에는 적용되지 않아도 좋은 건지 묻고 싶다. 정 후보자가 앞으로 '건전한 비판자' 노릇 대신 이 정권의 총대나 메는 구실을 하는 건 아닌지 사뭇 우려된다.

 

 


 

 

[김선주칼럼] 정운찬은 안성맞춤 총리다

 

 

[한겨레] 어떤 시사평론가가 자칭 사설 반민주특위 위원장이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설 국정원장쯤 된다. 한번 찍으면 평생을 지켜보면서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줄곧 스토킹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든 예술가든 학자든 언론에 자주 소개되고 이곳저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문제적 인간'이 될 소지가 충분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아 왔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후배들이 간간이 이 사람 어떤가요 저 사람 어떤가요 물어온다. 전 서울대 총장 정운찬씨가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후배들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좀… 구려…"라고 했다. 항상 모범답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말과 행동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 가면을 쓴 듯, 좀체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비쳐서다. 그런 유형의 학벌 좋고 인맥 좋고 마당발인 저명인사들은 마음속에 깊은 뜻을 숨겨둔 채 내색을 안 하다가 누군가 추대를 하면 못 이기는 체 업혀 가는 것을 숱하게 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수인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 나라 학부모들의 뼈와 피를 삭게 하는 교육문제를 그는 고교등급제와 대학의 기여입학제와 본고사 부활로 풀겠다고 했다. 교육은 원래 추려내는 것이라나 뭐라나. 추리고 추려서, 솎아내고 솎아내서, 전국의 학생을 1등부터 차례로 서울대가 싹쓸이하겠다는 뜻이다. 금상첨화로 돈 있는 부모들도, 돈도 실력이니까, 서울대에 포진시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2007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할 때도 좀 구렸다. 진흙탕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 발에 흙 한 점 안 묻히고 나올 수는 없는 법인데 그는 진창에서 구를 생각이 없었다. 정치하기는 틀렸고 총리 정도는 하지 않을까 단언했다. 들어맞았다. 경제분야의 정책에 대해선 케인스니 중도실용이니가 내포한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라고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2007년 한나라당에서 정운찬이야말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손색이 없다 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에 꼭 맞는 안성맞춤 총리다.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어쨌든 병역면제, 어쨌든 위장전입, 어쨌든 탈세 등 어쨌든 그것도 능력이고 실력, 구린내가 진동하는 다른 장관 지명자들과 얼추 비슷하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20년 스토커이기도 하다. 국정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저서 < 세기의 재판 이야기 > 를 다시 읽었다. 권력과 목숨보다는 명예나 이름을 중요시했던 인물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은 역저였다. 그도 그렇게 살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자신한테는 엄격하지만 타인들에겐 관대했던 박 변호사는 정치와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에 일부의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그가 바로 정치적으로 걸린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세기의 재판'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한 인간의 변천사는 한 시대의 변천사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그 사회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운찬, 박원순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듯 마음이 쩌릿쩌릿하게 서글프다.

어차피 그 밥에 그 반찬인데 그럴 줄 몰랐다느니 말할 게 없다. 정운찬 총리 지명자의 참모습이 빨리 드러날수록 좋다. 과대포장된 물건은 빨리 껍질을 벗겨서 쓰고 버리는 게 상책이다. 자, 정운찬씨.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안성맞춤 총리가 되어 당신의 소신대로 4대강도 살리고 3불 정책도 없애고 세종시도 어찌어찌하고 용산참사의 원인인 화염병도 제거하시지요. 이 국면을 잘 헤쳐 나가면 당신도 진흙탕에 구를 것이고 2007년도에 자의 반 타의 반 포기한 대권의 꿈도 움켜쥘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습니까.


 

김선주 언론인

 

 


 

 

[아침햇발] 하토야마 ‘쓰나미’ / 오태규

 

 

[한겨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쓰나미이고, 피 없는 혁명이다.

선거혁명을 통해 탄생한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새 정권이 지난주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시민의 반응은 '쿨'하다. 박수갈채도 열광의 함성도 없다. 일본의 대표 작가 무라카미 류가 < 뉴욕 타임스 > 에 기고한 대로, 일본 사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갑자기 어른이 됐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무심코 저질러 놓은 일의 엄청남에 놀란 나머지 반응 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장례식에서 애써 울음을 참음으로써 더욱 큰 슬픔을 표현하듯이, 기쁨을 억누름으로써 기쁨을 배가하려는 일본인 특유의 '참음의 미학'일는지도 모른다.

하토야마 정권의 탄생은 일본 근현대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낸 최초의 사건이다. 하토야마 내각 출범 다음날 < 아사히신문 > 사설이 표현한 것처럼,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9년 < 민정일신 > 이란 저서에서 '개진'과 '수구' 두 파가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는 영국의 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한 꿈이 비로소 130년 만에 첫발을 내딛는 의미를 지닌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그동안 근대화도 선진화도 민주화도 모두 위로부터 받았다. 사무라이가, 엘리트 관료가, 맥아더 장군이 던져주고, 시민은 그들이 만들어 준 매뉴얼에 맞춰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한동안 윗사람들이 방향을 잘 잡고 이끌어와, 시민도 큰 불만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소리 없이 투표장으로 몰려가 54년이나 상전 노릇을 하던 자민당을 순식간에 풍비박산 냈다. 예전처럼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하인을 졸로 보는 상전을 내쫓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온 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탓이 가장 크다. 그는 개혁이란 명분 아래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 도입해, 그나마 안정상태에 있던 일본의 사회, 회사, 마을, 가족을 갈가리 찢어놨다. 이 틈을 비집고, 생활 중시를 전면에 내세운 하토야마의 민주당이 낙담한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일본 사회의 중심추가 관에서 민으로 넘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고 민생 중시 정책이 밀려오고 있다. 외교정책의 중심을 미국에서 아시아 쪽으로 옮기는 발걸음 소리가 나라 안팎에서 들려온다. 한마디로, 자민당 정권 시절 일본을 지배해온 거의 모든 가치와 구조를 뒤엎는 초강력급의 하토야마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쓰나미는 진원지가 국민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쉽게 소멸할 것 같지도 않다.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뒤 열린 첫 기자회견의 모두연설에서 '국민 여러분'이란 표현을 무려 15차례나 사용한 것만 봐도 이번 쓰나미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국민 여러분이고, 그 국민 여러분의 승리를 진짜로 만들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국민 여러분을 위한 정치를 해 나가겠습니다." 마치 에이브러햄 링컨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연상시키는 이 문장에서,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일본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토야마 쓰나미는, 영화 < 해운대 > 에서 우리나라에 파멸적 타격을 준 그런 악성 파도가 결코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서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우애'의 물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일본에서 전후 최초로 이웃 나라에 호의적인 정권이 탄생한 만큼, 그것을 우애의 쓰나미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