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살인적인 주중 일과의 시작,

단테, 2009. 8. 31. 10:41

  

 

 

[야!한국사회] 누구를 위한 절친노트인가 / 김현진  (한겨레, 8/31)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워낙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 난데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가슴이 막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잽을 계속 맞고 맞고 또 맞아 두면서 다운될 것을 준비했다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아, 저 어른 곧 세상 떠나실지 모르겠구나, 하는 내심 각오하면서 맞이한 영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평소 건강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권양숙씨의 손을 잡은 채 어린아이처럼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그의 비통한 모습은 저러다 건강을 해쳐 돌아가실라, 하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정말 끝내 그렇게 되고 만 것 같아서 더욱 애통했다. 그나마 85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어른이라 저번만큼 비극적이지는 않고, 장례 절차도 대체로 위엄이 있었지만 그 과정이 몇 달 전 장례와 사뭇 다르게 차분하고 엄숙했던지라, 도대체 ‘국민장’인지 ‘경찰장’인지 알 수 없었던 노 전 대통령 떠나가던 길이 또 한 번 서글펐다. 분향소에 새까맣게 경찰들이 모여들어 분향을 하러 온 사람들과 불법 시위자를 골라내야 한다고 말하는 뉴스를 함께 들었던 택시기사 아저씨는 그럼 세상에 불법 분향도 있냐며 흥분했고, 나는 차창에 기대어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럼요 있고 말고요 아마 그들은 그렇다고 할 거예요. 어디 불법 분향뿐이겠어요? 불법 조문에 불법 애도도 흠잡고 아마 너무 슬퍼하면 불법 슬픔이라고 할걸요. 시민들이 정성스레 차려 놓은 시민 분향소를 의기양양하게 때려 부수는 사람들을 보니 자칫 너무 깊이 슬퍼했다간 이렇게 슬퍼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빨갱이라면서 잡아가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는 정중하고 엄숙했다지만 고인이 생전에 용서와 화해에 힘썼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용서나 화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건 보기에 영 불편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에 병실에 문병을 다녀온 후 “두 사람이 화해를 했다고 봐도 좋다”고 말했다는데 ‘비록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면서 과연 어떻게 화해를 한 것일까, 화해를 한 것도 아니고 한 것으로 봐도 좋다는 건 무슨 소리일까. 게다가 얼굴도 보지 못하고 화해를 하다니 이건 원격 화해? 김 전 대통령의 병실에 문병을 간 전두환은 “김대중 대통령 때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행복했다”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행복했다는 걸까, 어쨌든 아무리 봐도 좀 뻔뻔해 보인다. 역시 독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용서니 화해니 하고 호들갑인 광경을 보면 주변에서 억지로 바람 잡는 ‘절친노트’ 같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맞수’였던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병과 조문을 왔던 장면을 언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상과 빈소도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이제는 갈등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절친노트’에의 의지를 밝혔다. 누구 마음대로? 과연 누구를 위한 ‘절친노트’인가?

 

‘절친노트’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묘소 옆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물론 유가족의 바람대로 국립서울현충원에 고인이 모셔진 것이지만 화해라면서 너무 오버하는 이들은 어쩐지 좀 수상하다. 이번에는 사후 ‘절친노트’란 말인가. 용서니 화해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당사자뿐이니, 멋대로 과잉해석하며 ‘절친노트’ 찍는 일 당장 그만두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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