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관하여
- 오늘의 편지,
[세상읽기] 또 다른 '사태'가 오고 있다 / 김갑수
남의 글 읽다가 하도 생각이 똑같아 허허 웃을 때가 있다. 며칠 전 한 보수 신문 논설위원 칼럼이 그랬다. 대통령의 '메르스 활동' 사진에 대한 인상이 그 내용이다. 병원이나 대책본부 등지를 방문해 보고를 받는 사진 속에서는 왠지 기웃기웃 구경꾼인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동대문 상가에서는 단연 화색이 돌며 자신감 있어 보이더란다. 전자는 식견과 판단이 요구되는 자리였고 후자는 선거 유세장과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경험이 입증한다. 인사 참사, 세월호 참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참사…. 시리즈로 매해 참사를 겪으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소통 부재니 뭐니 현직 대통령을 두고 온갖 진단을 내리지만 부질없게 생각된다. 모든 문제가 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이미 미국 유력 신문이 사설에서 언급한 바 있다. 바로 지적 능력의 결핍, 그것이다. 두려움이 앞선다. 지적 수준으로 과거에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이가 김영삼 대통령인데 끝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대재앙을 초래했다. 앞으로 2년 반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무슨 '사태'가 또 기다리고 있는 걸까.
'당·정·청'이라는 종래의 표현에서 '정' 즉 정부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오직 당·청 관계, 당·청 갈등 등 용어만 사용된다. 그런데 국정의 양대 축인 당과 청이 밤낮으로 쌈박질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든 말든, 미운털 박힌 유승민 원내대표가 제거되건 말건 마찬가지다. 박정희식 명령복종 요구에 집권당이 응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혹여 친박근혜계 지도부가 등장하여 당·청의 일사불란이 생겨나면 내년 총선은 물 건너간다는 사실을 의원들은 잘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군림만 하려 드는 대통령의 통치 코스프레, 의전 도취증 앞에서 쩔쩔매는 새누리당 의원들 모습이 딱하기만 하다.
지난 2년 반을 지켜본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잘할 수 있는 일은 거대한 분란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놓고 군왕처럼 혹은 제3자처럼 내려다보는 처신이다. 집권 첫해를 달군 통진당 해산 작전이 전형적 사건이다. '초원복국집' 등으로 명성 높은 정치 기술자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용한 목적이 그것이라 짐작된다. 김기춘 후예로 이번에는 공안통 국무총리를 등판시켰다. 이력을 보니 정홍원 총리처럼 조용히 자리보전하다가 사라질 인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윤창중 망신' 직후 이른바 '내란음모'로 집권 1년 차를 메꿨는데 지지율이 바닥인 이 3년 차에는 또 어떤 분열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올 것인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아직 그 스캔들 내용은 가늠하지 못하겠으나 그것이 경제 재도약이나 인권과 복지 신장, 국제사회에서 입지 강화에 기여할 성격의 것은 아니리라.
정말 뭐하고 자빠진 세월인지 모르겠다. 중후장대형 국가 기간산업이 죄다 중국에 밀리고 있는 것 모르는가. 첨단 미래 신성장 분야가 토건정권 5년을 경과하면서 고사하여 버린 사실을 모르는가. 중하위 계층의 부채가 임계점을 넘어 버린 상황은 모르는가. 동북아 국제 정세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아예 실종 상태라는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가. 정말 몰라서 불어 터진 국수 운운하며 남 탓으로 허송세월할 것인가.
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뭐가 뭔지 모를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없는 셈 치자 하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선거를 겨냥한 공안의 공작이 회오리바람으로 또다시 몰아칠 테고 그렇게 남은 임기는 시끄럽게 흘러갈 것이고 대한민국의 필리핀행, 남미행은 가속화할 것이다.
없는 듯이 남은 임기를 조용히 마쳐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여야 정당에 호소하고 싶다. 차라리 입법부가 국정 중추에 나서는 것이다. 국민 시선에 완전히 노출된 국회 상임위나 아예 별도의 상설협의체라도 구성해 행정부를 통솔한다. 민영화나 대기업 정책 등 부딪히는 사안도 많겠지만 합의해서 국가를 끌어갈 공통점이 더 많은 것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여기에 정의당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준다면 얼마나 약이 될 것인가. 존재하나 역할이 부재한 대통령을 겪으며 해보는 헛소리다.
역병이 돌고 가뭄으로 논밭이 갈라지고 청년 실업자와 빈곤한 노인들은 자살을 택한다. 이웃 나라들은 반한을 넘어 혐한에 이르렀고 북한은 주제넘은 큰소리만 살벌하게 외친다. 과거 우리가 꿈꾸었던 새 천년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데 가장 난감한 존재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분열에만 능하고 국가운영에 절망적으로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니!
시인·문화평론가
*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0625.22030190751
- 편집하는 말,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지난 국회에서 스스로 찬성표를 던졌던 대통령 당선자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에 또 한차례 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중이란다. 세상에서 제일 참기 힘든 것들 중 하나는 다름아닌 '상황논리'다. 물론 시대, 세월에 따라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숱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다까끼 마사오가 단지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걸 빌미로 아직도 그를 "빨갱이"라고 불러선 곤란하듯이, 그의 '정체성'을 따져서 "군부독재"와 쿠테타 세력의 장본인으로 정의, 규정하는 편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행동거지나 철학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인물이 상황에 따라 다른 주장을 펼치며 다른 행동을 한다면 이는 신조라기보다는 일종의 핑계에 더 가깝게만 느껴질 뿐인 데다가 과연 그 인물한테 원래부터 '철학'이라는 게 존재했을까 하는 강한 회의부터 먼저 품게 마련인 법이다. 어쩌면 이리도 "참을 수 없을만큼" 가벼울 수가 있으랴... 딱하다 못해 이제는 아예 두렵고 징그럽기까지 한, 대통령 당선자와 그 무리들. 또 혹은 이 엄혹한 경제현실 앞에서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모 기업이 최고경영자와 임원들과 주요 직책자들. 보면, 참 똑같다.
한 시인의 말처럼 이게 단순히 '지적 능력의 결핍' 뿐이라면, 그 인물 주변에 있는 참모들이 각별히 더 신경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반성'마저 결핍의 상태라면?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되고, 아니 굉장히 위험해 보일 뿐이다.
이를 말려야 할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까?... 어차피 답은 뻔하겠지만,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싶구나. 쥐나 닭을 보면서 그저 '인간의 품격'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도 이미 어불성설일 테니까.
해결할 방법조차 마땅치가 못한 게 문제, 그게 가장 큰 고민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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