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5년 2월 24일 (화)

단테, 2015. 2. 24. 09:37

글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오늘의 편지, 

         

        

       

[이명수의 사람그물] 아는 게 힘이다

   

[한겨레]
  
영화 관람 후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니까 국기에 경례를 하더라!'는 대통령의 감탄사가 나올 때부터 구체적으로 불길했다. 드디어. 정부가 태극기 달기 운동 관련 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란다. 정부의 지원책, 동원책, 계몽책은 전방위적이다. 학생들에게 국기게양 일기와 소감문을 쓰게 하는 계획도 있다.

아주 오래전, 대통령이 '국기를 존중하는 일이 바로 애국이며 우리는 국기를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해야 한다'고 훈시했다. 지금처럼 정부는 곧바로 일사불란한 지침을 하달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정해 모든 행사에서 암송하도록 했고, 극장에서는 영화 관람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자세로 '애국가'가 흐르는 화면을 보도록 했으며, 저녁엔 거리에서 '전 국민 차렷! 경례' 구호 속에 1분 동안 일체의 동작을 멈춘 채 국기 하강식을 거행했다. 애국가가 나올 때 불량한 태도를 보인 이가 즉심에 회부됐고, 어떤 이는 비슷한 이유로 초등학생들로부터 '공산당인가 봐'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의 일이다.

 

그런 상황에선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수밖에 없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맞고 사는 사람이 누가 손만 들어도 머리를 감싸쥐는 것과 같은 반사적 행동이다. 감동할 일이 아니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모멸감 속에 그 시절을 통과했던 이들은 그걸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그런데 40년 후, 대통령이 감동했다는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데자뷔처럼 그런 국기 사랑을 다시 강제하면 어쩌나.

이 나라에선 나라라는 게 권력자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종속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4대강 추진이 대통령의 신념이면 아무리 반대가 심해도 결국 그렇게 된다.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대통령 마음에 들면 비판적 시각이나 다른 의제는 꺼내는 것조차 죄악시한다. 권력자가 마음에 들고 신념을 가진 일이면 그게 최우선이다. 어떤 정권이든 시한부일 따름인데 나라가 가져야 할 기본마저 무시한다. 한옥집을 전세 줬더니 세입자가 자기 취향대로 양옥집으로 리모델링하고 마당에 있는 오래된 나무를 뽑아내고 시멘트 주차장으로 만드는 꼴이다.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제정됐다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될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393자나 되는 내용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유독 암기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매타작을 당해가며 그걸 외워야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운동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괜한 죄의식에 막막하던 어린 마음을 혹시 들어본 적 있는가. 대통령의 훈시를 구현하기 위해 정부에서 하달한 구체적 지침의 결과다. 이 또한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의 일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애국심이 고양되고 윤리관이 확고해지지 않는다. 광복 70주년의 해이므로 한 집도 빼놓지 않고 태극기를 달아야 하고 그래야 광복의 의미가 확실해진다는 가설은 무개념하다. 권력자의 취향을 강요하는 폭력에 불과하다. 사람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다. 강제로 조건반사를 훈련시킨다고 내면화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미친 듯이 열광하는 북한 주민을 보면서 함께 박수를 치던 단상의 김정일이 납북된 이에게 귓속말을 했단다. '저거 다 시켜서 하는 짓이에요. 내가 다 알아요.' 그런 최악의 독재자도 인민의 속마음은 알았다는 것이다.

태극기 달기와 관련한 법 개정과 그에 뒤따르는 일사불란한 여러 조치들은 무지한 짓이다. 그걸 보는 국민들 마음이 어떤지 헤아린다면 그렇게 무식한 짓은 못 한다. 아는 게 힘이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 한겨레,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50223190012684 

                                                                    


- 편집하는 말,   

      

출근길... 모처럼 신문을 꺼내 읽다. 남다른 감칠맛. 느낌이 좋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을 대뜸 떠올린 탓은 역시 '곡학아세'와 '아전인수' 뿐으로 정신 못차린 부류들 탓이 제일 크다.

아침부터 미팅 때 짧게 든 생각이 그렇구나... 진정한 학문은 치열한 자기반성 속에서만 나오는 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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