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기억의 집착... 또는 상상
- 오늘의 편지,
[문화와 삶]기억과 상상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작용이다. 자신이 만난 사람이나 장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면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는 없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 또한 없다. 현재가 없는 사람에게 자아가 있을 리 없다. 기억에는 상상이 끼어든다. 상상은 기억의 틈을 메워주는 모르타르와 같다. 벽돌이 쌓아올려진 거대한 기억의 벽체는 상상의 모르타르에 의해 더욱 견고해진다. 맞든 틀리든 단단하게 자리잡은 기억은 상상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험에 의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기억은 왜곡된다. 상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상은 제멋대로이다. 그래서 기억 또한 제멋대로일 수 있다. 단지 제멋대로인 상상과 기억이 우리의 내부에서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기억은 과거의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키지만, 상상은 현재 당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말해줌으로써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상상 속에서 당신은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인, 멋진, 터무니없는, 끔찍한, 엽기적인, 폭력적인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 아마 당신이 무슨 상상을 하는지를 알면 곧바로 등을 돌리고 되돌아설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루 종일 품위 있는 직장 상사였던 당신은 매일 밤 당신이 못마땅해 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내 소리 없이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게 할 수도 있으며, 사랑스러운 아내 곁에 누워 낮에 스쳐 지나간 낯선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이어가고, 모든 기계장치를 단 배를 하나 만들어 지구와 우주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수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항구에 당당하게 들어설 수도 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몽상이었을 뿐이라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모든 우연의 가능성을 필연으로 만들려 애쓰는 당신은 누구인가? 모든 것은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며 그것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라는 변명은 엄청난 사건을 벌이고 법정에 끌려갔을 때 판사 앞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신이 상상하는 세계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이 당신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 남들은 몰라도 당신은 너무 잘 안다. 지킬 박사, 당신이 바로 하이드 아닌가?
상상이 현실과 다르다고 해서 그리고 상상이 제멋대로라고 해서 상상 속의 자신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숨긴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를 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의 반쪽일 뿐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놀라운 발명품, 멋진 예술작품, 감동적인 소설 그리고 야비한 사기, 끔찍한 살인마저도 상당 부분은,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면, 상상을 실현시킨 결과가 아닌가! 바로 당신이 밤마다 상상하고 또 상상한 그것을 실현하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나의 대부분은 상상하는 내 안에 감춰져 있다. 그게 바로 나이다.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면 세상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상상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는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그런가? 아닐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사회에서 엽기적인 상상은 매일 실현된다. 상상 속에서만 있어야 할 거대한 악몽이 현실이 된 이후 지속되는 지리멸렬한 과정은 누군가의 야비한 상상이 끊임없이 실현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억은 왜곡되고 졸렬한 상상이 그 자리를 메울 때 악몽은 그저 단순한 사건으로 치환된다.
내일 벌어질 일을 알고 싶은가? 그건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상상은 실현되기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지만 세상에는 없어도 우리 안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에 가장 근접한 정답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는가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all/newsview?newsid=20141013214107522
- 편집하는 말,
어제의 면담이 사실상 내 '미래'를 보장해줄 순 없는 노릇임을 깨닫는 순간, 현재 내게 닥쳐온 '위기'는 결국 그 '전망'에 관한 것임을 다시 안다. 여전히 '포지셔닝'에 애를 먹고만 있는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할 형국인데...
직장생활의 고단함만큼이나 버거운 일이 또 있으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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