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잠시의 휴식
- 오늘의 편지,
[기고] 한글 예찬의 빛과 그림자
모든 알파벳의 이상. 이런 한글에 대한 예찬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런 평가를 오랫동안 의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정작 우리 스스로는 그 우수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한글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뿌리가 깊었다.
오랫동안 한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묵힌 것은 오랜 주자학적 문화 의식에서 오는 한문 숭상 때문이었다. 전통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우리말을 '방언', 한글을 '언문'이라 불렀다. 한자는 '진서'로서 '학문 언어'였고 나날말을 적는 데 쓰는 것이 '언문'이었다.
'방언'이란 표현에는 조선을 천하의 일부로 보는 중화주의가 전제돼 있다. 지성적 행위와 행정의 매체는 '성현의 문자', 즉 한자뿐이었고 한글은 나날의 사적인 영역에서나 쓰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19세기 말까지 지속됐다. 요즈음 학계에서 '언문'에 낮추는 뜻이 없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것은 지성사의 전체 맥락에 눈을 감은 채 단편적인 증거를 성급하게 일반화한 잘못이 아닌가 한다.
한자 자체를 선비들은 모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최만리의 상소문에 분명히 나타난 것처럼 중국과 같은 글자를 써야 오랑캐를 면하고 문명국이 된다고 여겼다. <중용>에 나타나는 '동문'(同文)이 이런 뜻이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그 본디 뜻은 중국 안에서 나타나는 글자꼴의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이런 동문 의식에 따라 주체적이고 실용적인 향찰 표기법은 점차 그 자취가 희미해졌고 엄격한 중국식 한문 쓰기가 세력을 얻게 됐다. '독립신문' 창간호에서 세계 각국이 제나라 말과 글을 먼저 배우고 외국어를 배우는데 조선에서는 국문은 배우지 않고 한문만 배운다고 인습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글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또 다른 한 뿌리는 경성제대에서 비롯된 이른바 '과학적' 국어학의 전통이다. 국어학계의 주류가 실증주의를 내세워 한글에 대한 높은 평가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경계하고 한글 전용은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나온 것으로만 생각했다. 경성제대에 소개된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이란 개념은 역사비교 언어학이나 소쉬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데 지나치게 좁은 '과학' 개념을 잡은 것이었다. 또 당시의 언어학은 문자에 대한 적극적 관심 자체를 배제하고 있었다. 학문과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소박한 이분법에 머물러 있었다. '과학적'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대립되는 의미로 삼아 오랜 중화주의나 식민주의와 서로 손잡는 모습을 보였다.
한글의 재발견으로 오늘날 한글로만 쓰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자리 잡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분적으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모화사상과 제국대학의 식민주의 학문이 어느 정도는 극복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림자는 여전하다. 지난날의 한문 숭배는 지나친 영어교육으로 탈바꿈해 이어지고 있다. '국제화, 세계화'를 빌미로 영어 논문 쓰기와 영어 몰입 강의를 제도적으로 강요하거나 장려하는 대학이 많다는 것은 학문과 교육을 감당할 우리말과 글이 아직 단단하게 자리 잡지 못했음을 뜻한다. 지난날 '방언' 의식이나 '언문' 의식과 별 차이가 없다.
법정 공휴일로 두 번째 맞이하는 한글날이다. 얼마 전 서울시가 조선어학회 선열을 기리는 기념탑도 세웠고 한글박물관도 개관한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말과 글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낡은 인습이 어둠 속에서 진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글 예찬이 넉넉한 의미를 가지려면 구체적인 삶의 여러 영역에서 활짝 피어나야 한다. 우리말과 글을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중요하다.
<김영환 |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교수>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1008214008244
- 편집하는 말,
한글날 하루를 온통 여덟시부터 줄창 집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내는 건 또 그렇다.
내일 하루면 또 주말 연휴이긴 해도... 하루가 참 짧구나 하는 생각, / 뭐라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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