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파주의 꿈... 통일,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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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 통일준비인가, 현실도피인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노무현 정부와 얼마나 다른지 쉽게 확인하는 방법 하나를 최근 발견했다. 두 정부가 발간한 국가안보 전략에 관한 책자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물론 100쪽 안팎의 재미없는 책 두 권을 다 읽어봐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발견'이라고 할 수 없다. 대신 본론에 해당하는 3개 장(章)의 제목만 훑어보면 된다. 먼저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발전' '통일시대 대비 실질적 통일 준비' '한·미 전략 동맹 발전과 국제적 안보협력 증진'. 구체성이 없다. 추상적 포괄적이고 동어반복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것은 이렇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맹과 자주 국방의 병행발전' '남북 공동 번영과 동북아 협력 주도'. 북핵·동맹·남북 공동 번영이라는 의제와 평화체제·병행발전·협력주도라는 의제별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목차 제목도 보기 싫으면 책 제목만 봐도 좋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평화번영과 국가안보'(노무현 정부) '희망의 새 시대, 국가안보전략'(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의 책 제목에는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무의미한 수사, 진부한 표현은 있지만 목표 의식은 없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성과만 있으면 되지 제목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겉모습을 두고 시비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책이 아니라 실제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먼저 북핵문제를 보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거론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 일은? 없다. 남북관계? 끊겼다. 대북 인도적 지원, 교류 협력은? 중단됐다. 금강산관광은? 6년째 막혀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딱 한번 했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 대응은 두 가지다. 심기일전해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거나, 현실을 가리는 것이다. 박근혜의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북한에 환경·문화·민생 분야 협력을 제안했다. 5·24 조치 해제 없이는 협력사업을 못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것 같다. 10월 평창에서 국제회의에 북측 대표단이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한 실무회담을 사소한 문제로 결렬시켰던 정부의 태도와 충돌한다.
정부는 이렇게 코앞의 산적한 과제를 놔두고 가상현실의 세계로 북한을 초대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책자에 드러난 추상성은 이렇게 현실 은폐 혹은 현실 도피를 위한 것일까? 단정 짓지 않는 게 좋다. 그게 혹시 우연일 수도 있고, 예외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의 대표 정책인 통일준비론이 적당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평화가 정의의 결과라면 통일은 평화의 결과이다. 통일이 남과 북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통일은 정의와 평화가 심화·확장된 것이어야 한다. 평화의 강을 건너지 않은 통일은 더 큰 갈등, 새로운 갈등의 얼굴로 나타나 삶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통일의 두 주체인 남과 북은 대화 대신 대결을, 화해 대신 반목을 하고 있다. 통일의 선도자를 자처하는 남한은 사회 양극화와 정치 갈등으로 이미 내부로부터 찢겨져 있다. 한반도에는 평화의 적뿐, 어느 구석에도 평화가 없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평화체제 구상이란 게 "여건이 성숙되는 경우 평화체제 구축 문제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줄이 전부다. 한마디로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통일대박을 꿈꾼다며 통준위를 설치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박근혜는 야당·일본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갈등하는 상대를 잘 다룰 줄 모른다. 그래서 성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까다로운 북한 문제를 두고 북한과 타협하고 실랑이하는 성가신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신 갈등하는 상대와 마주하지 않으면서도 북한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시비를 피하고 사람들의 시선도 붙잡아 둘 것이 필요하다. 이게 통준위의 존재 이유 같다.
박근혜의 사고체계에서 북한은 통일의 주체가 아니라 흡수 대상이다. 통일은 북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 때문에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 씹지 않고 꿀꺽 삼켜버리듯 통일을 북한문제를 건너뛰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통일은 그에게 북한문제 회피책이자 북한문제 해결책이다. 그래도 그의 책에서 드러나는 추상성과 동어반복이 우연일까?
< 이대근 논설위원 >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series/112241/newsview?newsId=20140819213008666&seriesId=112241
- 편집하는 말,
파주 현장에서 2주째를 보내는 하루, 비가 퍼붓는 출근길에도 아랑곳없이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사무실에서 오전부터 내내 바쁜 업무들을 처리하는 와중... 문득 뉴스를 읽다가 오늘은 '통일'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게 불과 엊그제 같기만 한데, 요즘은 (정확히는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아예 그런 노래 따윈 들어보지도 못하겠고 또 현실감 또한 너무도 떨어져 지낸 최근의 몇년은 아닐까도 싶고...
'내수만이 살 길'이라는 경제논리에서라면, 당연히 '통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시즌 2'를 가능케도 할 대안인데... 다들 너무 북한정권을 몰아부치는 통에 오히려 요원하기만 한 꿈이 돼버린 지금, 덕분에 낙후될대로 낙후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채 오늘의 파주는 여전히 지도에도 안나오는 군사지역이자 오로지 '반공' 구호만이 들썩이는 고장... 20세기도 아닌데,
아직도 철책이 겹겹이 둘러쳐진 한강 하구를 바라보며 과연 내 세대에도 통일은 가능할까 되묻는다. 쉽지 않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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