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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일 (수)

단테, 2014. 7. 2. 00:01

글 / 정치에 대한 혐오증... 집권세력의 본질,          


오늘의 편지, 

   

    

           

[야 한국사회] 총리, 차라리 추첨하자 / 김우재

    

     

[한겨레] 민주주의는 완결된 형태의 제도가 아니다. 게다가 선거를 통해 대표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현재의 선출대의제는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폭주자본주의의 기관사 노릇을 해왔다.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선거제도 아래서는 49.9%의 민의가 묵살될 수 있다. 루소는 선거가 끝나면 인민은 다시 노예가 된다고 했다. 바로 그 미개한 정치체제가 여전히 한국에서 작동 중이다.
    

   

대의제의 도구인 선거는 본래 상층의 고급 인재를 선발하는 데 유리한 방식이다. 현재의 선거를 통해서는 정치 엘리트 계층이 형성될 뿐, 다양한 계층의 대표성이 담보될 수 없다. 선거를 뜻하는 낱말(election)과 엘리트(elite)의 어원이 같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치 엘리트들이 서민보다 기득권을 대표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높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선거가 대의제의 방법으로 일반화된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인 셈이다.
 
의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의회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대의민주주의가 지닌 모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다양한 실험들을 감행해 왔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제, 프랑스식 결선투표제, 미국의 타운홀미팅, 영미권의 배심원 제도, 한국도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대의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완벽한 민주주의란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끝없는 실험을 통해 얻어져야만 한다.
 
연세대 이지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아테네는 일부 행정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직을 추첨으로 뽑았다고 한다. 그 제도는 300년이나 사용되었고 이 점이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의 핵심이었다. 추첨제는 선거제가 지닌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추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이상인 평등, 자유, 공공선, 통합,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이며, 선거는 언제든 귀족주의로 변질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추첨민주주의엔 다양한 장점이 있다. 먼저 통치와 복종의 역할 교대가 빈번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통치자가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신중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제할 수 있다. 누가 다음번에 추첨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파벌주의나 금권선거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짧은 임기와 재선 금지를 결합할 경우, 모피아와 같은 관료계급의 발달을 막을 수 있다. 대의제의 대표성도 추첨제하에서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제도라면 사회를 지역별 및 소득계층별로 나누고 층위별로 추첨제로 대표를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의제다. 추첨제는 선거제와 결합될 경우 정치혐오를 없애고 선출제가 지닌 과잉/과소 대표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북유럽처럼 내 평범한 이웃이 우리 동네를 대표해 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총리 후보자가 둘이나 자진사퇴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총리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두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로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 정치인은 과감히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 총리,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지만 대통령 얼굴마담이나 하는 직책이다. 어차피 얼굴마담에 불과한 총리, 추첨으로 뽑아보는 건 어떨까? 총리직 자원자들을 모아 놓고 추첨 후 청문회 절차를 거친다 해도, 문창극씨보다는 나은 인물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총리를 추첨으로 뽑기 싫다면, 아테네를 따라 구의원부터라도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추첨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0630190010513 

                     


편집하는 말,   

   

일본 아베 정권이 드디어 '평화헌법'의 고삐를 풀어버린 채 극우의 한길로 치닫는다. 파멸인가? 

바야흐로 동아시아의 전운마저 감돌게 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증폭되는 시점, 

대한민국은 마치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모습을 답습하는 듯해 더더욱 

우려가 커진다. 심지어 총리 하나조차 제대로 인선하지 못해 인사청문회 탓만 일삼는 무능력은 

실소를 넘어선 분노마저 일으키게 만든다. 월드컵 예선탈락의 치욕을 만든 축구는 차라리 양반. 

어쩌다가 국가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를 허망히 지켜본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과 점점 더 깊어지는 불신은 역설적이지만 보다 더 강력한 실천을 요구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진리는 손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짓밟힌 

불우한 시대만이 그 필요성을 제대로 절감케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각성이 필요해진다. 

불과 두달도 채 지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민심이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결과는 참혹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희망의 맨처음 시작은 이렇다. 우습더라도.  

     

- 회사에서조차 '희망'의 끈은 쉬이 발견되지 못하는 상태, 곧 몰아칠 태풍을 직감하면서도...... 

  ('제 정신인가' 하게 만드는... 언제 어디서든간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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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ttp://blog.daum.net/dant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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