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노트/경제노트

역대최강의 입문, 『자본』 강독

단테, 2014. 4. 26. 01:50

- 강신준,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 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 (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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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실천' 그리고 '길'에서 나온 코기토총서, 그리고 도서관에서 다시 만난 이 책... 

대한민국의 '레전드'급에 속할 저자의 진정성 거기에 또 학문적 양심까지 묻어 있다... 

몇년만에 다시 꺼낸 책임에도 밤새 다 읽어낸 기분은, 무어랄까... 일종의 '개안'일까? 

    

결코 '동지애' 따위가 아닌, 유시민의 책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평점 만점을 선사한다. 

  

- 역대로 "자본"을 이렇게 친절히 설명 또 해설한 책도 없지 않나 싶구나... 학식의 힘. 

  

인문/사회과학 쟝르의 빼어난 성취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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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마르크스의 귀환과 『자본』의 재구성 

  

   

  내가 사용한 연구 방법-아직 경제적인 문제들에는 적용된 적이 없는-은 처음 몇 장을 읽어나가는 데서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이 책은 시원시원하게 곧장 읽어나가기 어렵게 되어 있는데... (『자본』제1권: M31)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 그리고 교환관계이다. (『자본』제1권: M14)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에 따라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즉 부정의 부정인 것이다. (『자본』제1권: M791)

 

  자본주의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의 전화 [과정에서는] 소수의 횡탈자에 대한 민중의 수탈이 문제이다. (『자본』제1권: M791) 

  

※ 세 가지 변혁의 구성요소 : 

    - 현재의 부정 (자본주의적 사적 생산의 필연적 모순에 대한 분석) / 『자본』은 이에 해당. 

    - 긍정의 미래 (사회적 생산에 대한 구체적 내용) 

    - 이행수단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적 생산으로의 구체적인 이행방법) 

    

   

제1부. 경제학은 하나가 아니다 

   

   

제1장) 경제학의 오해와 진실 

   

경제학에 대한 상식과 모순 

  "이 강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라고 기대하고 수강 신청을 하였습니까?" 쪽지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서 제출하게 하고 그것을 거두어서 집계를 내보았더니 '재테크의 기술'이 단연 1등으로 전체의 70퍼센트를 차지하였다... 

  경제학에 대한 맹렬한 관심이 이어지는 동안 부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가난해진 사람은 이런 빈곤층만이 아니다. 1998년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임금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1.7퍼센트였고, 이 비율은 2007년 68.2퍼센트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1년 동안에 벌어들인 돈 가운데 이들 임금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 (노동소득분배율)은 같은 기간 동안에 오히려 줄어들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8년에는 61.9퍼센트였지만 2007년에는 61.5퍼센트였다. 임금노동자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몫은 줄어든 것이다. 약 1,600만명 (2007년)에 달하는 이들 임금노동자들이 전체적으로 가난해진 것은 물론이다. 

 

두 개의 경제학과 우리들의 경제학 

  결국 한 가지 사실만 남는다. 그 책의 돈 버는 방법들은 소수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일 뿐 다수가 함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들을 따라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그 책을 따라 해봐야 돈을 벌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사실 이 두 부류 사람들 간의 차이는 매우 간단한 사실 속에 숨어 있다. 앞서 말한 열풍의 경제학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돈 버는 원리는 단 두 가지로 집약된다. 부동산과 주식이다. 그런데 부동산 소득과 주식 소득은 노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늘어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책들에서 말하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방법이다. 결국 그 책들의 마법이 통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책들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다수는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그런데 그 경제학이 노동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소수를 위한 경제학일 뿐이다. 그 경제학은 노동하는 다수에게는 경제학이 아니다... 그런데 임금은 누가 주는 것인가? 기업이 주는 것이다. 임금이 높아지면 주식 소득은 어떻게 될까? 줄어든다. 왜냐하면 기업의 회계장부에서 임금은 비용으로 지출란에 기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식 소득이 커지기 위해서는 임금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분명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임금은 많을수록 좋은 사람이 있고 적을수록 좋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노동하는 다수의 사람이며 후자는 노동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다. 이 두 사람간의 관계는 명백하다. 한 사람이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가난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경제학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혀 성질이 다른 두 개의 경제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 두 경제학은 그 목표가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반대이기도 하다. 한 경제학의 성공은 다른 경제학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노동하는 다수를 부자로 만드는 경제학이고 후자는 노동하지 않는 소수를 부자로 만드는 경제학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이 후자의 경제학 책들이라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우리는 왜 경제/경영서의 열풍이 소수의 대박을 낳으면서 동시에 다수의 쪽박을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다. 다수의 쪽박은 자신들의 경제학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경제학을 좇았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말하자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렇다. 이 책은 시중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그런 경제학 책들과는 부류를 달리한다. 이 책은 그런 책들 속에서 부자가 되는 길을 찾았지만 헛다리만 짚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곧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다수들이며 지은이도 바로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들'의 경제학이다. 반면 우리들에게 실패와 환멸의 쓴맛을 보여준 베스트셀러 코너의 책들은 '그들'의 경제학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바로 이 '우리들'의 경제학의 출발점을 이루며 '그들'의 경제학은 마르크스가 부정하는 현재의 경제학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본』의 재구성에서 두 개의 경제학은 하나가 현재의 부정에, 다른 하나가 미래의 긍정에 자리를 잡게 된다. 

  경제학이 이처럼 두 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이제 마르크스의 귀환은 '우리들'의 경제학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귀환이 올바로 실현되기 위한 『자본』의 재구성은 곧 '우리들'의 경제학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무덤 속에서 불러낸 원인이 현재의 경제위기라면 그 위기에 대한 해답도 바로 이 '우리들'의 경제학 속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이나 누리엘 루비니 (Nouriel Roubini)와 같은 학자들에게서 구하려는 희망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닐까 싶다. 경제위기의 시간적인 예측이나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은 경제위기의 해법과 전혀 무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들은 모두 '그들'의 경제학에 소속된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본래부터 이렇게 두 가지였을까? 경제학은 원래 이렇게 헷갈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경제학은 원래 하나였으며 그렇게 헷갈리는 구조로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경제학은 왜 두 개가 되었을까? 

 

 

제2장) 경제학은 왜 두 개가 되었는가: 출생의 배경 

 

경제학이 필요 없던 시절, 前 자본주의 시대 

  경제학이 지구 상에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대체로 16~17세기경 유럽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사의 교재들은 대체로 이 점에서 공통된 견해를 보인다. (Rubin, 1988; Hunt, 1982; Galbraith, 2002) 

  자급자족 체제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일치한다. 모든 생산은 생산자 자신의 소비로 직결된다. 생산단위와 소비단위는 일치하며 부의 영역은 생산이자 동시에 소비인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누구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비밀스러울 것도 없는 투명하게 공개된 상식과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 - 이솝 우화의 경제적 교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처럼 부의 문제가 상식인 곳에서 부를 연구하는 경제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위기가 가져온 기회, 필요에 의한 변화 

  전쟁과 역병은 유럽 농업의 자급자족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장기간의 전쟁은 전쟁이 벌어진 장소, 곧 농토의 황폐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전쟁물자의 징발로 농가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는 생산을 담당할 농민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을 의미하였다. 생산은 감소하는 반면 경제적 필요는 증가는 불균형으로 유럽 경제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어떻게? - 기회의 빌미를 제공한 사건은...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 폴로라는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동방견문록』) 

  

변화의 결과, 생산과 소비의 분리 

  바로톨로메오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였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아예 세계를 한 바퀴 도는 항로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동방과의 교역이 시작되었다.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유럽에서 물산이 풍부한 동방과의 교역은 큰 이익을 안겨주는 사업이었다. 최초의 상업 항해를 수행한 바스쿠 다 가마는 단 한 번의 항해를 통해 무려 60배의 이윤을 실현하였다. 

  교역은 부족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곤궁의 돌파구일 뿐만 아니라 이제 한밑천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교역에 목을 매었고 유럽은 교역을 위한 경제체제로 개편되어나갔다. 사람들은 부족한 물자를 상인에게서 조달받는 대신, 상인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생산해주었다. 생산은 자신의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소비를 겨냥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생산은 소비와 분리되고 교환이 이들을 매개하게 되었다. 부의 영역은 이제 생산과 소비가 통합된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와 교환의 세 영역으로 분화되었다." 이렇게 경제의 구조가 바뀌게 됨으로써 먹고사는 문제와 부자가 되는 방법은 이제 더는 모두가 아는 공개된 상식이 아니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됨으로써 내가 수행하는 생산이 내가 소비하는 부와 분리되었고, 따라서 열심히 노동함으로써 생산을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소비로 이어지지 않게 되었으며 반대로 내가 소비하는 부가 나의 직접적인 노동과 무관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노동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가능성과 함께 아무런 노동을 수행하지 않고도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배신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생산과 소비를 분리시킨 것은 교환이었다. 교환이 생산된 부를 소비로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소비되는 모든 부는 사실상 교환을 통해서 조달되었다. 교환이야말로 부의 새로운 원천이 된 것이다. 그런데 교환을 통한 부의 조달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업이라는 특수한 활동을 수행하는 소수 상인들만 아는 은밀한 비밀이었다. 부의 문제는 공개적인 무대로부터 베일 속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그것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학, 경제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경제학의 등장과 초기의 발견 

  부자가 되는 원리를 상업 속에서 찾아내고 그에 따라 상업의 육성을 주장한 이 연구는 최초의 경제학이 되었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첫 복음이었다. 이 복음은 상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불린다. 이 최초의 경제학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경제학이라는 복음의 기본 원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첫째, 경제학은 부자가 되는 원리와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둘째,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치의 크기를 늘려야 한다. 

  중상주의의 원리는 실제로 자급자족이 붕괴된 유럽의 경제적 곤란을 해결해주었다... 상업의 확대는 시장들 사이의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을 점차 해소해나가고 이는 시장들 사이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업이 더는 돈 버는 방법이 아니게 된 것이다. 복음의 종말이 오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복음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복음의 단서는 변화된 경제구조 속에 있었다. 부의 영역은 이제 '생산=소비'의 단일한 구조에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교환이 중간에 매개하는 분화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 3개의 영역 가운데 부의 종착역인 소비영역을 제외하면 두 개의 영역이 남는데 교환영역에서 가치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제 가치가 늘어날 수 있는 영역은 단 하나 생산영역만이 남게 된다. 복음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했다. 즉 생산에서 가치가 늘어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였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과제는 다음과 같이 집약되었다. 

  - 생산비 (생산에 투입된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갖는 생산물을 어디에서 생산할 수 있는가? 

  루이 15세의 어의를 담당했던 프랑수아 케네라는 사람이 그 답을 찾아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농업에서만 그런 생산비 이상의 가치가 생산된다고 믿었다. 제조업은 물건의 형태만 바꾸는 것일 뿐 아무런 생산물의 증가도 가져오지 않지만, 농업에서는 한 알의 볍씨에서도 이미 수십 개의 낟알이 열리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농업이야말로 부를 증가시키는 생산영역이라고 주장하였고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 경제학을 중농주의(physiocracy)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경제학은 제대로 실험되지 못하였다... 부의 실체인 가치가 그의 생각처럼 자연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이웃나라 영국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고전파 경제학의 성립과 의문점 

  1776년 "국부의 성격과 원인에 관한 연구" (흔히 줄여서 "국부론"이라고 부른다)가 출판되었다.  스미스는 여기에서 부의 실체인 가치는 인간의 노동이며 부의 증가는 자연의 혜택이 아니라 가치, 즉 인간의 노동에 달려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부의 원천이 인간의 노동이라는 점을 전제로 '생산-교환-소비'로 분리된 부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생산에는 세 가지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자본, 노동, 토지가 바로 그것이다... 

  스미스의 경제학은 부의 실체에서 부의 생산과 분배에 이르기까지 경제의 전반적인 구조를 비교적 완전하게 설명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것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이후의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의 경제학 체계는 고전적 경제학으로, 그의 경제이론을 추종하는 학파는 고전파(Classicals)라고 불리게 되었다.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파악하면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정확하게 설파한 고전파의 주장은 영국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나타났다. 우선 모든 사람이 자본가가 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본의 축적이 진행되면서 자본가가 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자가 되어갔다. 어차피 그런 것이었을까?... 부는 늘어나는데, 그리고 그 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바로 노동인데 정작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부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 것이다. 

 

'그들'의 경제와 '우리들'의 경제학 

  복음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본래 노동생산물은 모두 노동자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사회가 진보하면서 노동생산물은 사회 내의 각 계층 간에 자연적으로 분배되는데..." 극소수의 자본가와 토지소유주에게는 엄청난 부가 분배되었지만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작은 몫만 분배된 것이었다... 이렇게 뒤틀린 분배가 자연의 질서였을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을까? 

  분배의 질서는 하느님이 부여한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질서였다. 그것이 인위적이라면 인간에 의해 그 질서는 수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경제학의 족보 

  시몽드 드 시스몽디는 처음 스미스의 경제이론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1815년 영국에 공황이 발발하였을 때 대중의 극심한 궁핍을 목도한 그는 고전파의 복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생산과 소비간의 불균형이 이들 두 현상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경제구조의 전면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뒤를 이었다. 

  : 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 토머스 호지스킨 등이 시스몽디의 견해를 이어 발전시켰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 방식을 고안해냈다. 하나는 모든 노동자를 아예 자본가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모두가 자본가로 되기 위해서는 규모가 작아야 했다. 영세한 규모의 자영농이나 자영수공업자가 그 모델이 되었다. 또 한 가지 방안은 교환영역을 제거해버리고 생산과 소비를 다시 통합한 경제체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처음에 혁명으로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뒤틀린 분배구조로 인한 고통은 그런 희생을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1830년 프랑스 리옹에서, 1848년 유럽 전체에서, 1871년 파리에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봉기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이상촌을 건설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실험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새로운 복음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각성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1867년 한 학자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내었다. 이전의 복음들에는 아직 새로운 복음에 대한 갈망과 의지만 있었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었다... 그래서 새로 첨가되는 과학은 미래의 목표와 이행수단을 현재의 부정과 함께 갖추어야 했고 그런 의미에서 '과학'으로 구별되엇다. 이리하여 드디어 노동자들의 복음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경제학의 고전적 출발점을 이루었다. 고국 독일에서 추방되어 망명지 런던에서 빈곤과 싸우며 이루어낸 마르크스의 『자본』이었다.  

  '우리들'의 경제학은 노동자들의 손안에서 만들어진 다음 종적을 감춰버린 부의 행방을 추적하고 그것을 다시 노동자에게로 되찾아오기 위한 경제학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세 요소와 관련하여 이 경제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 첫째, 이 경제학의 대상은 부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경제구조이다. 우리는 이런 경제구조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며 이것이 곧 현재의 부정을 이룬다. 둘째, 분리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분배구조는 자연적 필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이다. 이때 이 마음은 바로 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이것은 미래의 목표와 관련된다. 셋째, 분배를 결정하는 인위적인 구조는 서로 다른 두개의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이들 두 이해는 대립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분배문제는 이들 두 이해 간의 긴장과 갈등을 수반하며 이것은 세 번째 요소인 이행수단과 관련된다. 

  


제2부. 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3장) 부는 무엇인가:  상품 

 

부는 어떤 모습을 띠는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제1권: M49) 

 

상품생산의 발전과 완성: 자본주의적 생산 

  "베인스에 따르면 1마력짜리 자동 뮬 방적기는... 366파운드의 면화를 실로 만드는 데 150시간이 걸리지만... 이를 직접 손으로 작업할 경우에는 27,000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자본』제1권: M412~413) 

 

상품교환을 통해서 부는 가치가 된다 

  "어떤 사용가치의 가치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용가치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뿐이다... 따라서 같은 크기의 노동량이 포함된 상품들, 또는 같은 노동시간에 생산될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크기의 가치를 갖는다." (『자본』제1권: M54) 

 

가치가 된 노동, 부의 행방을 알려주는 첫 번째 단서 

  상품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상품은 교환을 위해서 처음에는 사용가치를, 그 다음에는 곧바로 교환가치를 필요로 한다... 상품이 두 개의 가치를 필요로 함에 따라 그것을 만드는 인간의 노동도 두 개의 노동이 된다... 

  두 개로 분화된 노동은 서로 다른 노동이다. 유용노동은 생산단계에서 상품의 현물, 즉 사용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이다. 그것은 질적으로만 서로 구별된다. 집을 짓는 건축노동과 옷을 만드는 방직노동은 각기 만들어내는 사용가치가 다르며 그 사용가치를 통해서 서로 구별된다... 그래서 그것은 개별적 노동이며 구체적 노동이다. 

  교환과정에서 상품은 가치의 크기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다른 상품과 교환된다. 이때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가치라는 노동은 어떤 노동일까?... 그것은 그냥 인간의 노동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노동시간이다.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가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노동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질적으로 동일한 노동이며 양적으로만 구별된다. 또한 그것은 실제로 개별 생산자가 소비한 구체적 노동시간과는 달리 합의를 통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노동이다. 

  바로 이 노동의 이중성이야말로 '우리들'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개념이 된다... 

  그것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제4장) 가치의 진화된 형태: 화폐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매쟁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상품과 언제 어디에서나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이라고 부른다. 

  

가치형태의 주인공, 화폐의 등장 

  사용가치를 갖지 않고 가치만을 나타내는 일반적 등가물 - 그것을 우리는 화폐라고 부른다. 

 

보론: 가치와 교환가치(가격)의 관계 

 

 

제5장)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돈은 누가 버는가 

 

돈을 버는 돈, 그것은 자본이다 

 

돈 버는 비밀의 열쇠 

 

비밀의 열쇠가 된 상품: 노동력 

  "노동력의 소유자가 그것을 상품으로 판매하려면 그는 그것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자신의 노동능력이나 인격에 대해 자유로운 소유자여야 한다." (『자본』제1권: M182)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위해 화폐소유자는 상품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해야 된다. 이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즉 한편으로는 그 노동자가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의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판매할 아무런 다른 상품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노동력의 실현에 필요한 모든 물적 조건에서도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자본』제1권: M183) 

 

청소를 통해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피의 법률: 일하지 않으면 죽는다! 

 

부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본유통정식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 (1): 노동시간을 늘려라 

  "1분 1초가 수익의 요소인 것이다."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 (2): 노동시간을 줄여라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계의 발명이 과연 인간의 일상적 노고를 덜어준 것인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존 스튜어트 밀, 경제학 원리) 

 

제6장) 가문의 영광: 자본의 혈통, 순혈주의 

 

자본 이전의 역사: 부자 되는 방법 

 

혈통의 발견 

 

혈통이 만들어진 과정, 가문의 영광 

 

자본의 혈통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금욕과 관리 

 

세습의 가훈 

 

기적의 뒤안길: 축복과 저주 

  그러나 자본에 축복인 것이 노동력에는 저주가 된다. 양지는 반드시 음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두 가문의 운명은 태생적인 이유로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자본의 축복인 남아도는 노동력은 판매되지 못한 노동력, 즉 실업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제3부. 만들어진 부는 어떻게 분배되는가 

 

 

제7장) 왜 분배가 문제인가: 분배의 기본구조와 임금 

 

1) 분배의 기본구조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역전: 분배문제의 기원 

 

'그들'의 경제학의 해답: 가난은 하늘도 어쩔 수 없다 

 

'우리들'의 경제학의 반론: 가난은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가치에서 소득으로의 전화를 의미하는 분배는 기본적으로 가치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한 부분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지불되는 임금이며 다른 한 부분은 가치의 생산에서 자본을 제공하여 노동력을 구매한 사람이 가져가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자를 임금소득, 후자를 자본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 두 소득 간의 관계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소득의 원천이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 한 가지 뿐이고 소득이 두 가지라면 하나의 소득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의 소득이 감소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들간의 이해는 대립적이고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대립관계는 또한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들의 대립관계는 '숙주-기생'의 관계를 이룬다. 왜냐하면 자본소득 없는 임금소득은 가능하지만 임금소득 없는 자본소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임금소득이 자본소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득의 원천이 가치라는 사실, 즉 생산의 구조와 직접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소득은 임금소득에 기생하는 소득인 것이다. 이처럼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기생적인 관계가 분배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룬다. 그것이 숙주소득이라는 점에서 사실 분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이미 노동력의 소유자들이 구조적으로 쥐고 있다. 임금을 둘러싼 역사의 발전과정은 바로 그런 해결의 방향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분배문제의 구조: 가치에서 소득으로 

 

2) 모든 소득의 원천: 숙주소득 임금 

임금의 왜곡: 가격이 아닌 가격 

 

임금이론의 왜곡: 임금은 자연적으로 결정된다? 

 

임금이론의 귀결: 임금의 관리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하나의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공급도 독점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단결에 적개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임금수준 관리의 꽃은 단연 비정규노동이다. 

 

임금의 역사적 진실: 임금은 교섭에 의해 결정된다 

 

 

제8장) 기생소득의 분배구조와 1차 기생소득 

 

기생소득의 서열구조: 4개의 기생소득 

 

기생소득 분배의 출발점: 잉영가치에서 착취의 흔적을 지우다 

 

첫 번째 기생소득, 이윤의 분배 원리: 평등! 

  경쟁은 언제나 평등이라는 자연적 필연으로 귀결되지만 바로 그 평등은 다시 인간의 의지에 불을 붙여 경쟁을 낳는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기 때문이다. 

  

평등 속에 감추어진 숙명: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 

  결국 돈을 벌려는 자본의 본능은 특별잉여가치의 생산을 지향하고 그것은 언제나 노동생산력의 상승을 통해서 이루어짐으로써 잉여가치의 상대적 비율, 즉 이윤율의 하락을 유발한다.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잉여가치의 상대적인 비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잉여가치의 생산은 개별 생산력과 사회적 생산력 간의 격차에서 발생하고 이 격차는 자본들 간의 경쟁에 의해 시차를 두고 소멸하기 때문에 사회적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사회적 평균이윤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두 번째 기생소득, 상업이윤의 분배원리: 박애! 

  상업이윤이 사회적 평균이윤율에 따라 분배되는 이유는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이 원래 하나의 몸을 이루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두 자본은 형태상으로만 서로 구별될 뿐 성질에서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만일 상업이윤이 산업자본의 이윤보다 낮으면 상업자본은 산업자본의 역할을 스스로 직접 수행할 것이고 반대로 상업이윤이 산업자본의 이윤보다 높으면 산업자본은 상업자본의 역할을 자신이 직접 수행할 것이다. 

 

  

제9장) 기생소득의 기생소득: 2차 기생소득 

 

1) 이자: 재테크의 원조 

세 번째 기생소득, 이자의 기원 

 

이자율의 결정과 한계 

 

신용, 이자가 만들어내는 환상: 재테크의 천국 

 

2) 지대: 재테크의 황금률 

네 번째 기생소득, 지대란 무엇인가 

 

지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대가 만들어내는 재테크의 환상 

 

 

제4부. 전망 

 

 

제10장) 경제위기와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 

 

1) 경제위기, 혹은 공황 

마르크스를 불러낸 미해결 문제, 공황 

   

공황은 왜 발생하는가 

  하나는 사회적 평균이윤율을 하락시키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자본이 남아도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투자를 통해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즉 과잉자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노동력을 남아돌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업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즉 과잉인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잉자본은 가치의 생산에 투하되는 자본이 계속 증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과잉인구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원천인 노동력이 증가하지 못하고 따라서 생산되는 가치의 절대량이 늘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둘은 모두 가치의 생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인 것이다. 

 

공황의 해법: '그들'의 경제학과 '우리들'의 경제학 

  마르크스가 보기에 공황은 현상적으로는 대부자본의 신용영역에서 발생하지만 대부자본이 사실상 가치의 생산에 기생하는 영역이므로 그 원인은 생산영역에 있다. 그러므로 공황문제의 해법은 생산영역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 그는 생산영역에서 이 생산의 모순과 한계를 찾아내었다. 그 모순과 한계는 생산의 확대가 신용의 과잉팽창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것과 (신용과 생산의 '숙주-기생' 관계) 생산과 소비의 모순 (가치실현의 한계)이었다. 그가 생산영역의 이런 한계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제의식 ('우리들'의 경제학)이 노동자의 손에서 사라진 부의 행방을 쫓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르크스가 공황의 원인과 과정을 찾아낸 것은 그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를 '생산'교환-소비'의 구조로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가 그런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출발점이 부의 행방을 쫓는 데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2) 공황과 자본주의의 역사 

마르크스 이후의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구세주, 케인스 

 

케인스를 대체할 새로운 처방, 신자유주의 

  ...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생명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단지 예언자 마르크스의 과학적 이론과 의사 케인스의 임상 경험이 알려주는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자본주의적 본성이 억제되는 정도에 따라 자본주의의 생명 연장도 그만큼만 가능하리라는 점이다. 

 

공황 이후의 전망: 자본주의의 미래 

  공황의 원인과 구조에 대한 마르크스의 논의는 자본주의가 이 자연법칙적 현상에 의해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불가피한 변화의 방향은 앞으로 자본주의를 대신하게 될 새로운 인위적인 제도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암시도 함께 포함한다. 『자본』의 재구성이 가능하고 동시에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다시 찾아온 공황에 의해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먼저 생산력의 내적 한계는 어떻게 해야 돌파할 수 있을까? ; 

  공황 이후의 자본주의도 이들 과잉자본과 과잉노동력을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용제도의 발전을... 살펴보았다. 자본의 가치증식은... 생산의 내재적인 속박이자 한계를 이루는데, 이 속박과 한계는 끊임없이 신용제도에 의해 파괴된다... 신용제도는...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과도적 형태를 형성한다." (Karl Marx, 『자본』제1권: M457)

  마르크스는 가치생산의 한계가 신용에 의해 돌파되는 것을 주의깊게 관찰한 다음 그 요인이 바로 자본소유를 사적 송유에서 사회적 소유로 바꾸는 데 있음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회적 송유야말로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주의가 앞으로 이행해나갈 새로운 생산양식의 주요한 요소였다. 결국 생산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 다시 말해 과잉자본과 과잉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자본소유를 사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 전화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공황 이후 자본주의는 그런 방향으로 변화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은 공황의 자연적 강제력이 자본주의에 가하는 필연적인 작용이며 자본주의는 이 작용의 방향을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공황 이후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를 결국 국유화한 것은 바로 그런 공황의 자연적 강제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음으로 실현의 모순은 어떻게 해야 돌파할 수 있을까? ; 

  실현의 모순을 일으키는 요인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특징 때문이다. 즉 생산된 가치는 시장에서 판매되어야 하고 시장의 판매는 구매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구매력은 소득에 의해 결정되고 소득은 생산이 확대될수록 감소하기 때문에 결국 생산된 가치와 소비능력의 격차는 점차 확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이 확대될 때 소비도 함께 늘어나야만 한다. 케인스의 처방은 임금소득의 보장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고 공황 이후 오바마 정부가 대규모 소득재분배 정책을 시행하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높이겠다고 공언하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공황의 강제력은 소득분배의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때 소득분배의 구조는 생산의 확대가 소득을 감소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생산의 확대가 감소시키는 소득은 하나 뿐이다. 임금소득이 바로 그것이다. 생산의 확대는 잉여가치의 축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잉여가치의 축적은 임금소득의 감소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공황이 강제하는 소득분배의 구조 변화는 임금소득의 감소를 억제하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본주의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그것이 공황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제한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황의 강제력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미래, 즉 그것을 뒤이을 생로운 생산양식을 준비하고 그런 새로운 생산양식의 성격을 알려주는 방향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공황의 집행인인 신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것 (신용의 최고 형태인 주식회사)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양이며, 따라서 스스로를 지양하는 모순으로서, 그 모순은 일견 새로운 생산형태로 넘어가는 단순한 통과지점으로만 나타난다... 신용제도에는 이중적인 성격이 내재해 있는데... 이런 이중성으로 인해 로(Law)로부터 이삭 페레르(Isaak Pereire)에 이르는 신용의 주요 대변인들은 협잡꾼과 예언자의 얼굴이 함께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Karl Marx, 『자본』제1권: M457)

  그런데 공황의 이런 강제력을 무시하고 그것이 요구하는 변화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가득 찬 운동은 근대산업이 겪는 주기적인 순환의 부침을 통해서 실천적인 부르주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부침의 절정이 바로 총체적 위기(공황)이다. 이 총체적 위기는... 신성 프로이센 독일제국의 벼락부자들에게도 변증법(즉 과학)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Karl Marx, 『자본』제1권: M28)

  

제11장) 액션 플랜, 무엇을 할 것인가 

 

『자본』의 유산과 액션 플랜 

  그러면 이들 두 요소 (미래의 긍정, 이행수단)에 대한 단서가 『자본』에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 먼저 미래의 긍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드디어 자신의 발로 서게 되면, 바로 그때부터 노동의 사회화, ... 생산수단의 사회적 생산수단으로의 전화, 따라서 사적 소유자에 대한 수탈 등은 더욱 더 심화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이제부터 수탈되는 것은... 자본가들 자신이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이나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적 외피와는 조화될 수 없는 시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외피는 폭파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자본』제1권: M790~791) 

  그것은 바로 생산요소들에 대한 사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의 모순인 공황의 핵심적인 원인이었던 생산의 내적 모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현재의 부정 속에는 이처럼 미래의 긍정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미래로의 이행수단에 대한 단서도 역시 『자본』 속에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겨난 자본주의적 취득양식 (즉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은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개인적인 사적 소유에 대한 제1의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에 따라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즉 부정의 부정인 것이다." (『자본』제1권: M791) 

  이행수단은 현재가 과거로부터 이행했던 것과 같은 방식, 즉 그것이 과거 (봉건적 생산양식)의 부정을 통해서 현재로 이행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이행수단은 사물의 변화와 운동과정을 파악하는 과학적 방법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과 그것의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성하는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언제나 그것들을 일시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자본』제1권: M28)    

 

긍정의 미래: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2008년의 공황도 역시 미국과 유럽의 경우를 보면 국가적 소유와 임금소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공황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생산수단인 자본 (현실의 모습으로는 기업)은 점차 사회적 성격을 확대해나가고 임금소득은 계속 사회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띤다. 그것은 자연적 필연성이며 의지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향은 결국 최종적으로 사적 소유를 완전히 사회적 소유로 대체하고 임금소득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통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전화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암시한 자본주의 이후의 생산양식, 즉 미래의 긍정이다. 

   

이행수단: 사회주의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사실 자유의 나라(미래의 긍정, 즉 우리가 여기에서 이름 붙인 사회주의를 가리킴)는 궁핍과 외적인 합목적성 때문에 강제로 수행되는 노동이 멈출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자본』제3권: M828)  

  "물적 생산영역의... 저편에서 비로소... 인간의 힘의 발전 (즉 참된 자유의 나라)이 시작되는데... 노동일의 단축이야말로 바로 그것을 위한 근본 조건이다." (『자본』제3권: M828)

 

현실 사회주의의 좌초: 이행과정에 대한 교훈 

  민주주의가 없이는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없고 사회화라는 과정이 없는 사회주의는 달성되지 않는다. 현실 사회주의가 좌초한 경험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 없이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장애요인과 조건이 따르는 이행과정은 힘들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일 수 있으며 그것은 충분히 예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회의와 혼란, 그리고 포기가 속출하였고 그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행과정의 지루함에 절망한 기회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였고 이행의 종착역을 의심하는 수정주의, 아예 이행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교조주의도 등장하였다. 따라서 이행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덕목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일거에 이행을 달성할 수 있다는 볼셰비키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아무리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이행은 결국 자연적 필연성으로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을 과학적 확신으로 견지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무덤에서 돌아온 마르크스는 『자본』을 통해서 노동하는 '우리들'에게 이 점을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자본』은 그렇게 재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자본』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단서이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과학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에필로그| 환상에서 과학으로 

  

 

변화는 어떻게 오는가: 변증법의 마술 

  과거와 미래가 종착점과 출발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이것이 변증법이 설명해주는 변화의 과학이다. 

     

환상에서 과학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올 변증법적 전환이 사회화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그것이 민주주의의 확대를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인 것이다... 

  재테크의 승률도 이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처럼 낮은 확률에 우리는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이런 낮은 확률은 과학이 아니라 우연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확신은 힘든 길을 피하지 않고 편한 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경제학으로 가는 길이다. 과학적 확신이란 '그들'의 경제학에 현혹되어 쉬운 방법처럼 보이는 재테크의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걸지 않고, '우리들'의 경제학이 일러준 길을 따라 힘들고 오래 걸리는 방법인 민주주의의 확대에 매진하는 일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노동자계급의 결정적인 무기로 간주했던 (Marx and Klings, 1864년 10월 4일)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돌아온 마르크스가 『자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결국 다음의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다. - "환상 (그들의 경제학)에서 과학 (우리들의 경제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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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경제우리들의경제학

저자
강신준 지음
출판사
길(도) | 2010-02-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왜 다시금 용도폐기 되었던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해 전 세계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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