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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썼던 칼럼의 제목이 “목표는 ‘생존’이다”였는데, 한 해가 꼬박 지나서도 그 제목은 절절히 유효하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면, 줄초상의 난마에서도 누추한 삶이나마 견디고 버텨야 한다면, 또다시 역사에 길을 물을 수밖에 없다. 충격요법이자 반면교사로 5세기 중반 무렵 ‘어리석고 어둡고 미친 듯 포악한’ 임금들이 연이어 나왔던 중국 남조의 유송시대를 펼쳐 읽노라니, 문득 지인에게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는 그의 화분에 피었다는 양란이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꽃 한 송이가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까요?”
아버지의 능묘를 파헤치고, 쇠창을 들고 다니며 길가의 백성들을 마구 찔러 죽이고, 절에서 키우는 개를 훔쳐 잡아먹는 패악과 패륜을 저지른 왕들이 지배하던 80여년의 세월을 어루더듬던 내가 의심스럽고 쓸쓸하게 물었다.
“꽃이 위로가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고, 꽃에 위로받을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의 고운 답장을 한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삶과 시간, 삶의 시간을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소제(少帝)의 시절에 태어나 순제(順帝)의 시절에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온전히 지옥이자 환란이었을까? 그래도 그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며 오늘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내일을 꿈꾸지 않았을까? 어쩌면 삶은, 인간의 역사는 그러하기에 마땅히 지속되는 것이라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겨울 땅속에서 숨죽여 있던 알뿌리가 불현듯 꽃을 피우듯, 그 꽃에서 봄을 깨닫고 다시 조심스레 가만히 설레듯.
-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이 핀다면 / 김별아 (한겨레,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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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삼성 가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는 가수 나훈아의 지극히 예외적인 사람다운 얘기도 나오지만, 삼성 가신용 전용기의 스튜어디스들이 무릎 꿇고 서빙한다는 엽기적인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몸 자리를 보전하려고 영혼을 파는 사람이 무릎 꿇고 서빙하는 스튜어디스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또 40대 전략기획실 임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60대 계열사 사장들이 입신출세한 사회에서 절대다수가 가차 없이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져도 삼성왕국에선 ‘별일 없이’ 잘들 살고 앞으로도 잘들 살 것이다. 그것은 한편 시장에 내다 팔 영혼의 경쟁력이 뒤떨어져 육신으로 대신 감당해야 하는 몸의 노동자들의 죽음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가령 오늘 지방선거의 열기 속에서 민생 또는 서민경제를 외치는 사람들 중 삼년 전 이맘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여 스스로 몸을 사른 서울의 택시운전사 허세욱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망자의 명복을 빌면서 속절없이 바라 본다. 저세상에는 피치 못할 현실보다 바꿔야 하는 현실의 의미가 살아 꿈틀대기를. 그래서 영혼들이 성숙하기 전에 타협하거나 피폐해질 것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기를.
- 스물셋 나이에 지다 / 홍세화 (한겨레, 4/7)
새벽까지 잠 못이룬 채 이틀째 얄팍한 수면만 허락한 내 일상이 오늘은 모처럼 정시퇴근이랍시고 아홉시에 퇴근을 하다.
하루종일 해외출장 준비로 좀 성가신 일들이 많았으되, 별 부담은 없는 터라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법도 한 일이겠고, 또
밀려 있던 일과들 역시 조금씩은 제자리를 잡고 움직임을 드러내려는 모양이다. 이제는 온전히 성과들을 챙겨낼 단계다.
어제 마음먹은대로 애초에 상정한 그 모종의 'role playing'은 계속되고, 이를 바탕으로 나 역시 포지셔닝을 이룰 듯한.
출근길에 읽은 한겨레에서 두컷의 칼럼을 올려놓는다. 김별아의 글은 모처럼 따스함이 느껴져 읽기 좋았다. 홍세화의 글
역시 삼성이라는 대집단에 대한 반성적 고찰의 측면과 또 우리들 자신에 대한 뼈아픈 질책과 성찰을 포함한 점 등에서
곱씹어 읽을만한 내용이다. (확실히 글에 있어서는, 형식보다 내용이 늘 우선하는 법이다.)
노래에 얽힌 포스트들을 요즘 연신 서두르는 모양인데, 정작 문제는 내가 그 일에 올인할만큼 대단히 여유롭진 못하다는
거다. 마냥 앉아 음악이 담긴 동영상들만 쳐다보거나 또 애써서 그것에 얽힌 사연과도 같을 법한 얘기들만 주절거릴만큼
그리 썩 '한가한' 편도 못되는 게 엄연히 내 현실인 때문이다. 올해 역시 당장 여태껏 단 한편의 글조차 제대로 고민해본
적 없었으며, 게다가 신춘문예는 고사하고 각종 문예지들마다의 공모일정 역시 오리무중인 상태다. 더욱 심각한 건, 이를
대체할만큼 또 대단한 어떤 다른 일들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지도 못한 형편일진대... (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심각히
직장에서의 "입신양명"을 꾀하는 것도 또 아니지 않은가?... - 도대체 지금 내 꿈은 무엇이더냐? 무얼 실천하고 있느냐?)
- 진지하게 이를 좀 더 고민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또 모색할 차례다. 지금은, 허울좋게 마냥 놀 때가 아니고.
음악 포스트들 역시 혼을 다한 글쓰기까지는 좀 어렵겠어도, 여전히 내 글쓰기의 한계를 그 선에서 그어선 안된다. 하물며
또 이를 직업으로 둔 사람들조차 있지 않은가? - '직업적'이기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한 블로그 안에서 최소한의 일관성은
좀 필요해보인다는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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