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오늘은 두편의 글,

단테, 2009. 9. 9. 23:36

 

 - 한겨레에 전면광고를 낸 삼성, 올해 "처음 보는 일"이로다... 

    ※ 관련기사 (관계자 양반 왈, "오해하지는 말라"는구나 ㅎ)  ☞ 오해 따위는 깨끗이 해소시켜주는 예전 기사 하나 더,  

  

 


 

 

[세상읽기] 악비의 묘 앞에서 중얼거리다


괴테는 말했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나는 돌아왔다. 애당초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기 위해 떠난 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행길이 우리 역사에서 벗어나 남의 역사의 흔적을 좇아 헤매는 일이 되고 말았다. 찜통 같은 난징의 한낮에 서성(書聖) 왕희지의 고거를 헤맬 때, 지인의 문자 한 통이 황해를 건너 날아왔다.

‘DJ, 오후 1시43분 서거!’

누군가의 교활한 수사인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서늘하게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호텔방의 텔레비전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일은 낯설고 먹먹했다. 어쩌자고 현장에서 한 시대의 저물녘을 회억하지 못한 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국제뉴스로 소식을 전해 듣고 있단 말인가? 이 부박한 생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일을 겪는 것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믿는 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이방의 땅을 떠돌며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지를 곱씹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2000년 전 오나라와 월나라의 치열한 쟁투 속에서 복수를 부탁하고 죽은 합려의 무덤 앞에서 ‘뱀이 자기 머리로 자기 꼬리를 무는 것’과 같은 역사의 쳇바퀴를 상기했고, 명 태조 주원장의 효릉과 그의 물질적 후원자가 되었다가 토사구팽당한 대부호 심만삼의 수묘 앞에서는 떠나기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터뷰에서 읽었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길항관계를 떠올렸다. 역사는 장강처럼 흘러 천년에 다시 천년이 갔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하던 황제의 권력도, 시대를 풍미한 영웅도, 미색으로 한 나라를 고꾸라뜨린 요부도 세월 속에 물거품처럼 사라져갔다. 지금도 삐걱거리는 채로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10년은, 아니 10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찰나일 뿐이다. 풍진 속에 분분히 떠도는 티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관우와 더불어 최고의 명장으로 숭상하는 남송의 장수 악비(岳飛)의 묘 앞에서 그 짧은 한순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확인한다. 현실에서, 그는 졌다.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싸우자고 주전론을 외쳤던 악비는 투옥되어 끝내 독살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이었다. 한편 주화론의 선봉에서 타협을 주장하며 악비를 모함해 죽음에 이르게 한 진회(秦檜)는 20년간 재상 자리를 꿰어차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예순여섯에 천수를 다했다. 역사가 그들을 심판하지 않았다면 악비는 다만 고집불통의 이상주의자일 뿐이고 진회는 명민한 현실주의자일 것이다.

하지만 후대는 악비의 묘 앞에 진회를 꿇어앉혔다.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경고판이 생뚱맞다 싶더니, 등 뒤로 포승에 결박되어 쇠창살 안에 갇힌 간신들의 철상에는 후손들이 뱉은 가래침이 흥건하다. 진회의 이마는 누가 망치로 내려쳤는지 땜질이 되어 있기까지 하다. 수백년이 아니라 수천년이 흐른대도 역사의 심판은 이토록 무섭고 냉정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왜 통쾌하기보다 착잡할까?

‘미래의 복수와 승리가 현실의 모욕과 패퇴를 보상할 수 있는가?’

악비의 묘 앞을 서성거리며 나는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되뇌었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눈을 부릅뜨리라는 각오쯤은 할 수 있었다. 핍박당하는 악비와 승승장구하는 진회를 지켜보는 일마저도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 문상도 못 가고 맘껏 슬퍼하지도 못한 채, 악비의 묘 앞에서 중얼거렸다. 지켜볼 것이다.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무한한 역사 앞에 유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일는지도 모른다.


김별아 / 소설가 
 

 


   

 

[사설] 쌍용차노조 민주노총 탈퇴의 의미


쌍용차 노조가 어제 총회를 열어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했다. 정리해고 문제로 노사가 극한 대결을 벌이다가 대타협을 이룬 지 한달여 만의 일이다. 먼저, 이번 결정을 쌍용차 파업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노총의 노선에 대한 거부 측면에서만 부각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식의 해석은, 쌍용차 사태를 극한으로 몰고 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회사 쪽과 정부의 잘못은 감추고 노조의 문제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노조의 강경한 태도를 문제삼으려면 회사와 정부의 타협 거부도 함께 지적해야 마땅하다.
쌍용차 노사는 극적인 타협을 통해 회사를 살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으나, 파업 이후 상황은 영 딴판으로 돌아갔다. 회사는 협상 타결 이틀 만에 농성에 참가했던 노조원 등 94명한테 해고와 엇비슷한 ‘휴업’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노조 간부들의 공장 출입도 봉쇄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총회는 이렇듯 전체 조합원의 구심점인 노조 집행부가 사실상 와해된 가운데 이뤄졌다. 기존 노조 집행부는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어, 이번 결정의 효력을 둘러싼 논란마저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조합원이 지지한 이번 결정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건 잘못이다. 기존 노조에 극도로 불리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이번 결정의 의미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총회를 주도한 쪽은 쌍용차가 살 길은 민주노총 탈퇴뿐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정치 노선에 쌍용차가 휘둘렸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유에서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됐다’, ‘투쟁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판이, 이번 투쟁에 적극 참여하거나 지지한 이들 사이에서도 들린다. 파업 타결 이후 상황을 수수방관한다는 지적도 있다. 배경이나 이유는 다르지만, 노조 상급단체에 대한 불신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노동계 지도부는 왜 투쟁의 당사자인 조합원들로부터 불신과 비판을 받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마땅하다. 물론 노조 상급단체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뿐 아니라 노동계 전반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노동문제가 정치·경제와 긴밀히 얽혀 있으니 정치적 대응도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바탕은 조합원들의 신뢰와 지지다. 노동자가 불신하는 노동운동은 죽은 거나 다름없음을 노동계는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출근길에 읽은 한겨레의 article 두개,

 

그리고 오늘은 또 하루종일을 파워포인트 앞에서 씨름한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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