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하루에 한편의 글, 그렇게 시작하는 아침, 앞에서...

단테, 2009. 8. 27. 13:18

 

  

 

[야!한국사회] 슬픈 한국, 슬픈 김대중 / 김규항  (한겨레, 8/27)

 

 

[한겨레] 식당에서 밥을 먹다 소식을 들었는데, 내가 사석에서 어떤 이의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내 세대에게 김대중씨는 단지 정치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선생”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가 한신대에서 강연하는 걸 본 게 내가 그 학교를 다니게 된 주요한 이유가 되었을 만큼.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정치적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투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해 나는 내내 비판적이었다. 그건 자유의 두 얼굴 때문이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자유를 빼앗겼던 한국인들에게 자유는 언제나 절대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정치적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 즉 통제되지 않는 자본의 자유는 매우 나쁜 것이다. 우리는 굶어죽은 자식을 안고 ‘불쌍한 아이의 고통을 멈추어주신’ 신에게 감사드리던 자본주의 초기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한국 민주화는 대중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화는 자본에도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후자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1970년대 이후 레이건과 대처의 주도로 진행된 전지구적인 자본의 운동이다. 김대중씨가 그 거대한 흐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가 하필이면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 편입하는 통과의례라 할 아이엠에프(IMF) 사태에 맞추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기며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운 그는 그렇게 한국 사회를 자본의 자유가 넘치는 세상으로 개혁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그를 이어 대통령이 된 노무현씨는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토로했다.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비정규 노동자가 절반을 넘고 청년들이 88만원 세대가 되고 아이들은 공포에 젖은 제 부모에 의해 감옥의 수인들처럼 시들어가는 세상이, 그러면서도 “부자 되세요!” 서로 덕담하는 기괴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책임을 김대중씨에게 씌워야 할까? 그건 지나치게 강퍅한 일일 것이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헌신한 것만으로도 그는 제 사회에 충분히 훌륭했다. 책임은 그가 아니라 대중에게 자유의 두 얼굴에 대해, 민주화와 신자유주의화에 대해, 절차적 민주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해 환기하고 견제했어야 할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수구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이라는 감성적 언어로 현실을 분칠한 채 정치적 자유만 강조해온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들에게 물어나 보자. 당신들, 정말 오늘 현실이 ‘이명박의 독재’ 때문이라고 믿는가? 이명박만 물러나면 정말 이 현실이 분명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당신들의 진보가 제도 정치, 엔지오, 신문 방송, 대학 등에 똬리를 틀고 앉아 ‘비주류풍 주류’로 자본의 피폭을 모면하는, 말하자면 다시는 옛날처럼 풍찬노숙하지 않으면서도 진보연하고 싶어 하는 당신들의 추레한 욕망에 맞추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들이 이명박에 치를 떨며 이명박과 공생한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은 참 슬픈 사회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싸움과 희생으로 자유를 얻었는데 이젠 그 자유에 의해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스러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김대중씨도 참 슬픈 사람이다. 그토록 염원해온 바로 그 자유에 의해 스러져가는 수많은 착한 사람들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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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전 내내 어제 작성했던 자료를 다시 또 다듬고 손질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벌써 점심시간,

오후에도 계속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며, 그래도 시월 즈음엔 싱가폴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가볼 테며

이리도 궁상맞게 버텨내야 하는 경제적 현실 앞에서 여전히 나는 무기력하기만 하구나, ......

 

 

P.S. 어제 문자 메시지로 받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인사, 문득 반가움이란 단어도 낯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