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일기

불투명한 전망,

단테, 2009. 1. 13. 22:03

 

 

 

 

박찬호 선수가 WBC를 앞두고 대표팀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단다. 눈물을 흘렸다는 그의 표정... 역대 최고의 대한민국 야구선수가 흘린 눈물은 그의 관록과는 전혀 상관없게도 현재의 그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 아무튼 그의 건투를 빈다. 이미 그를 통해 숱한 용기를 얻었던 한 국민으로서라도 말이다.

 

회사 내지 직장에서의 불경기를 극복하는 처세술 역시 비슷한 형편이 아닐까 싶다. 능력과는 또 전혀 상관없게도 가해지는 혹세무민의 잔혹한 평가들과 혹은 조직의 중차대한 의사결정 따위가 무능한 자들이거나 이기심에서 출발된 주장들로부터 비롯되곤 하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진풍경들 앞에서 거꾸로 선량하기만 한 직장인들 내지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현대판 노예처럼 부득불 생존만을 위해서라도 오로지 처절한 생존방식만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아이러니컬한 시대. 게다가 딱 올해만큼 대단한 경제위기도 없던 터라 (너도 나도 IMF 때보다 어렵다고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니) 더더욱 이 풍경은 너무나도 흔하디 흔한 풍경으로 펼쳐지는 중이기도 하다. 한마다로 우울하기 짝이 없을만한 현대사회의 경제적 그늘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일까. <전망>이 어둡다는 말. 고생을 하더라도 그 끝에 희망이 보인다면 그건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감수할만한 성격일 것인데, 어찌된 것인지 지금의 이 고생은 왠지 자꾸만 힘빠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조직이 비단 사회 뿐만이 아니고 일개 회사 혹은 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전망>을 수립하는 주체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란 새삼 주목받고 강조되어야 마땅할 것이라는 점. 그 일깨움을 이미 충분하게 이해하고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늘 힘이 빠지고 용기를 잃기만 하는 걸까. 권력이야 어차피 늘 강자의 것일 테나 심지어 <정의>마저도 그들의 편이라면, 도대체 선량함이 살아남을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아주 본질적인 물음은 혹, 아닐까? 하는 회의감.

 

- 요즘의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 또한 대개가 엇비슷한 경우들은, 혹 아닐까?

    

    

P.S. 언젠가 내가 썼던 평론의 한 주장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승리>다." 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