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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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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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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달싹일 때 해안선이 느리게 펼쳐진다 거기 혀가 있다 행려병자의 시체 같은
풀잎처럼 흔들리는 그림자, 달은 빙산이 되어 은빛을 풀어헤친다 물빛을 깨고 비치나무 냄새 번져오는
젖을 희끗희끗 빤다 안개, 서늘한 빗방울, 물방울 띄워올린다 뿌리가 부풀어오른다 물거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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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웅거리고 부서지고 내장처럼 고요 쏟아져 내리고 내려야 할 역을 잃고 흘러가는 페름 행 전신주 흰 눈송이들 백야의 건반을 치는 사내 -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 길고 가는 손가락 갈라지고 떠도는 핏방울 소용돌이 변두리로 나를 싣고, 창 밖 쁘이찌 야흐 행 마주보며 또 길게 늘어나고 민무늬 토기처럼 얼굴 금이 가고 스쳐가는 가, 가문비나무 그늘 나뭇가지 그림자 일렁이는 시간 산란하는 밤의 시작을 경계를 지나 나는 또 바라보고 있고
마젤란 펭귄들 발자국 소리 울음 아, 미역줄기처럼 늘어지고
*
움푹 파인 자국, 발자국들, 혀 뿌리가 길게 늘어져 꿈틀거린다 하얀 모래밭, 그리고 하얀 추위, 그리고 하얀 포말
기억과 마디가 끊긴 생선뼈와 조개 무덤 사이를 가마우지들 종종 걸어나오고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 우수아이아, 숲길, 뒤틀린 비치나무 뿌리, 물거품이 사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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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16/03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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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2만명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가 그래도 제 입에 풀칠 한번을 하기 위한 "시 팔아 돈 사기"를 어찌 그냥 앉아서 비난만 하고 있는 게 온당하랴. 비록 제 주제는 못되더라도, 또 더한 노력의 근거를 삼아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있는 신인 (어쩌면 내 선배라 불러도 응당 합당할 이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일 터... 이에 대해선 입을 닫자.
모처럼 "조중동" 특히 중앙일보를 찾다가 모바일에서 여의치는 못해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꺼내본다. 최근 몇년 동안 눈에 띌만큼 인상적인 문체들 거개는 하나같이 언어적 상상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거. 또 이는 비단 상상력만의 소산이 아니고 전적인 훈련의 결과라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올해 국내 문단을 석권하다시피 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야말로 이 점을 웅변한다.)
나 또한 어쩌면 이 '과목'을 이수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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