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메모

[문학][시] 황지우 - 뼈아픈 후회

단테, 2015. 12.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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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또 술자리

간밤의 기척을 뒤로 한 채 새벽부터 깨다

바깥 날씨는 춥고 몸은 고단한 채

잠시 또 물끄러미 앉는다

황지우의 시 한편을 다시 떠올리다

이 지독할만큼 객관적인 '슬픔' 앞에서

내 슬픔은 오히려 더 주관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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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드디어 그룹 인사가 있었지

잘 알고 지내온 지인 몇몇은 승진을 했고

몇번을 주저하다가 축하메일은 생략한 채

도도히 나도 내 갈 길만을 재촉한다

어차피 남남이요, 회사도 어렵다

이 주관적 슬픔에 관해

단 한번도 말을 건네주지 못한 그들

그들 또한 그들만의 길을 가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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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결별, 모든 정치는 결국 합일 또는 결별이다

며칠전의 안철수도 그랬고 진보진영 역시

지난 총선 직후에도 그랬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몇몇은 다시 그럴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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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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