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화이트데이
- 오늘의 편지,
설탕물 나온 파리
[한겨레21] [노 땡큐!] 굳이 분류하자면 '중소기업'에 해당할 작은 매체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웹에서 누군가가 "대기업 정규직이래봤자 '꿀단지에 빠진 파리'일 뿐"이라 자조하는 걸 봤다. 동료들과 말을 나누니, 동감과 함께 더한 자조가 흘러나왔다. "그럼 우린 뭐야?" "글쎄, '설탕물단지에 빠진 파리' 정도?" "그럼 백수는?" "뭐, 맹물에 빠진 파리쯤 되겠지…."
맹물에서 익사하기 직전
이것이 엄살 아닌 현실이라면, 파리들은 어떤 식으로 익사를 피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남들이 안 볼 때 잠깐 단지에서 빠져나와 몸을 말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단지 안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잠깐 빠져나와 몸 말리는 방법을 잊게 되는가보다.
최근 나는 34개월가량 다니던 그곳을 그만두고 다시 벌판으로 나왔다. 이 업계치고는 좋은 곳이었고 추억도 많았다. 무엇보다 들어가기 전 나는 '맹물'에서 익사 직전이었다. 회사에서 그동안 배운 것이 많지만, 나는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 걸 내 인생에 알찬 것으로 본다. 첫 번째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 주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점. 두 번째는, 그 감각이 없을 때의 내 행동 양상이 전적으로 내 책임은 아니란 걸 알았다는 점.
가령 2011년의 나는 자신이 왜 이렇게 무계획적인 사람인지를 자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치과를 들러야 할 상황인데, 원고료가 들어올 때마다 술이나 마셨던 것이다. 월급을 받게 된 지 3개월차 정도에 치과를 찾아갈 때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치과를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월평균 벌이가 100만원 이하, 그나마도 어느 달엔 200만~300만원이 들어오고 어느 달엔 몇만원이 들어오는 식의 '불규칙 벌이'의 상황에선, 다음 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치과 진료비를 알아보는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밥은 먹어야 하니 밥 먹다 결국엔 술을 마셨던 것이다. 나는 더 잘할 수 있었겠으나, 그것은 적어도 내가 평균보다 무계획적인 인간이기에 생긴 일은 아니었다. 더 이상 슈퍼에서 사는 물품의 가격을 열심히 챙겨보지 않던 2012년의 어느 날, 월급쟁이인 나는 자신이 지난해에 적어둔 빽빽한 가계부 엑셀파일을 발견하고 울컥했다. 그 파일 속에서 2011년의 나는 어느 물건은 어느 슈퍼에 가야 얼마나 더 싼지도 챙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새해부터 월급쟁이 생활을 벗어난 나는 지난 몇 년간 충분히 주의하지 못한 본인의 소비 행태를 점검하는 중이다. 사용 행태에 비해 과하게 설정된 정액서비스, 잘 쓰지 않는 부가서비스 등을 날리니 월 몇만 원 정도가 더 확보된다. 월급쟁이 때도 따져보고 싶었지만 그땐 시간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백수의 감각은 예리하게 회복되는 중이다. 집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약속 시간에 늦기 시작했다. 결코 기자들에게 점심시간에 전화 걸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어쩌다 내가 부재중 전화가 찍힌 기자에게 전화를 건 시각은 12시40분이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행태는 돌아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음식을 조리하는 능력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자기 몸은 스스로 말려라
주변을 살피면 오히려 작은 회사를 몇 년 다니다 퇴직한 이들이 퇴직금을 받아들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보니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이해는 된다. 설탕물에서 나와 맹물로 들어가려면 몸을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마다 이직을 하면서 조금씩 쉬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어차피 서로를 수십 년 볼 사이로 보지 않는 세상에선, 자기 몸은 스스로 말려야 한다. 이렇게 '설탕물에서 빠져나온 파리'는 잠깐 날아오를 채비를 하다 맹물에 다시 몸을 담근다.
한윤형
* 한겨레21,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313164006950
- 편집하는 말,
모처럼 한겨레21을 꺼내 읽는다... 주말에 집을 내려갈 적마다 한권씩 사서 읽던 그때도 기억나는 이 주말... 올해 들어 처음 고향을 찾게 될 오늘이기도,
'화이트데이'라는 낯선 별칭이 토요일 하루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때, 정녕 내 '꿈'은 어딘가를 향해 펼쳐지고 있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문학, 영화, 철학, 사회... 그리고 경제, ; "돈독만이 오른 사회"를 힘겹게 지탱하며 겪어내는 동안 어쩌면 내 인간형 또한 달라졌을까? 이른바 '노예의 삶'...
데스크에서의 글쓰기도 이제 이틀간의 여정을 포함할 테므로, 이 대목이 끝자락이 될 듯.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이 플랫폼은 늘 일과시간에 묶여 또 집에서는 저사양 넷북 한대로는 힘겨워, 부득불 '모바일'의 힘을 빌리는 중인데...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될 듯한 태블릿도 사실상 무용지물.
벌써 3월도 중순이고, 봄자락이 서서히 드리울 계절이니 오랜만에 '여행' 같은 기분이라도 좀 느껴 이번 주말은 테마를 정해두도록 하자꾸나, 화이트데이... 오늘의 선물은? 벌써 11년이나 지난 글,
※ 2004년 3월 14일 (일), http://blog.daum.net/dante21/1532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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