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다시 호수공원... 2월의 끝
- 오늘의 편지,
[세상읽기] 한국 자본주의의 '후기산업화'
'세상읽기'라는 칼럼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칼럼 코너의 제목에 좀 불편함을 느낀다. 성인이 된 이들은 누구나 몇십년 쌓인 저마다의 삶의 내공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바탕을 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는 눈이 없는 이가 없다. 그런데 일개 생활인에 불과한 나 따위가 '세상을 읽어주겠다'며 나서 떠들어 댄단 말인가. 자칫하면 나 개인의 시답잖은 신변잡기나 잡스러운 감상의 편린들을 대단한 혜안이나 되는 양 자기도취에 빠져 이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죄만 짓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 칼럼을 쓰기로 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일정한 주제를 잡고서 그에 입각한 '세상읽기'로 글의 폭을 제한하기로 스스로 다짐하였다. 주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환골탈태, 이른바 '후기산업화'이다.
골치 아픈 사회과학 개념을 꺼내놓고 학자연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또 막연하게 세계 경제 전체의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같은 큰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조각조각을 더듬어보고 싶다. 아주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주 밝은 빛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변화의 깊이와 넓이가 아주 클 때에는 그것이 변화라고 느껴지지도 않기 십상이고, 그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아주 예민하게 눈과 귀를 바짝 세워야 할 때가 많다. 나는 한국 자본주의가 지금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의 와중에 이미 들어서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눈과 귀에 포착된 그러한 변화의 모습들을 이 글을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느닷없이 이렇게 큰 이야기를 늘어놓아 어리둥절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잠깐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만들어 왔고 또 그 속에서 삶을 일구어 온 '한국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자본주의는 항상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된 한국 자본주의 또한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다른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자원과 권력을 극소수에게 집중시키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수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조직되고 배치되는 '동원' 형태의 사회·경제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 소수는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도 산업들의 뒤를 따라 이를 빠르게 모방하는 이른바 '캣치업' 형태의 발전 전략을 취했으며, 그 성과물은 자본 축적을 통한 성장의 지속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소수에게 집중적으로 분배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치고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경제는 물론 없겠으나, 한국 자본주의는 이러한 전 국민적 차원의 총체적 '동원'이라는 것이 조직되고 실행되는 수준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회 조직 전체가 경제 성장과 자본 축적을 위한 거대한 기계 장치가 되어 끝없이 굴러간다. 그 밝은 측면은 '한강의 기적' 운운의 고도성장이지만, 그 어두운 측면은 민주주의의 실종,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삶의 황폐화와 불평등과 같은 것이었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을 자임하는 보수 측과 '민주화' 세력을 자임하는 진보 일각에서는 그 두 측면 하나씩을 붙잡고서 오랜 논쟁을 벌여왔던 것도 모두 아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고자 하는 문제는 현존하는 한국 자본주의 모델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가 아니라, 과연 그것이 앞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이다. 방금 말한 거대한 사회적 동원의 기계 장치로서의 한국 자본주의 모델은 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이라는 전형적인 산업 사회의 틀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세계 경제는 물론 그 속에 깊게 잠겨있는 한국 경제 또한 '후기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이제 옛날처럼 노동이나 자본 등의 생산 요소를 그냥 투입한다고 해서 부가가치가 생산되는 세상이 아니다.
또 '정해진 직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로 생계를 보장받는' 존재로서의 노동은 급속하게 축소되거나 아예 소멸하고 있다. 불평등한 부의 배분이 자본 투자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희망사항일 뿐 불평등과 만성적 실업은 이제 고정된 환경이 되어 버렸다. 노동 인구의 감소와 초고령화가 코앞에 다가왔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기업들은 미래의 발전 방향을 놓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장치라고 종교처럼 믿어왔던 부동산과 대학 졸업장은 이제 실망을 넘어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후기산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과연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삶을 만들어왔던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 모델이 버텨낼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낡고 경직된 구조물이 그 밑동을 허물고 있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만나 벽이 갈라지고 터지는 소리와 자국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세상읽기'가 되도록 눈과 귀와 머리의 힘을 한번 짜내어 보도록 하겠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 경향신문,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50227205714271
- 편집하는 말,
2월의 마지막 날은 황사 현상으로 온통 뿌옇게 흐린 하늘 또 어젯밤 늦게까지 마신 술 탓에 여전히 찌뿌둥한 채 보낸 하루구나... 호수공원을 찾았다. 모처럼 겨울을 보낸 호수의 물결 앞에서 잠시 또 쉴만한 시간을 갖고, 서서히 다가오는 봄을 맞으려는 마음의 준비들도 해둘 차례.
현 정부를 규탄하고 처단하자는 움직임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종일 집회로 이어진 모양. 이 시국을 넘어서 시대를 앞서는 지혜와 용기 또한 여전히 필요한 대목... 그것들을 위해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여전히 불투명한 경제의 그늘, 가계의 궁핍, 흉흉하기만 한 회사에서의 소문들 또 알 수 없는 미래와 아무 준비도 갖추지 못한 형편인데다 내내 일과에 쫓겨 제 시간만 해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운명임에도... 엄연히 다가올 일들이 예견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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