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일주일, 그 다음의 미래...
- 오늘의 편지,
[김형경의 뜨거운 의자]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여러 해 전, 어느 문학상 심사 때의 경험이다. 선배 격인 평론가 작가인 남성과 후배 격인 내가 심사위원이었다. 선배 작가가 당선작감이라고 추천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을 성적 소모품 취급하는 남성의 판타지였다. 더욱 나쁜 점은 여성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그녀가 자발적으로 성적 관음과 파괴를 갈구하는 듯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작품이 당선작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세 사람이 의견을 조율한 결과 그 작품이 당선되지는 않았다.
심사 후 식사 자리로 옮겼을 때 선배 작가는 미간을 찡그린 채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잠시 후 소주를 한 병 주문하더니 술을 마시며 기어이 불편한 속내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무조건 사과하는 것. 내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명백히 불쾌한 존재였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 의견에 대놓고 반대한 것, 남성 중심 사회의 약자로서 감히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주장한 것.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또다시 사과의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받은 그분이 전화했을 때 화해의 대화를 나누며 또 한 번 사과했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말에는 늘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와 함께 주체 개념의 지평을 연 이후 무수히 많은 철학자, 사회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체, 자아, 자기 등의 개념에 대해 연구했다. 정신분석학은 참자기, 거짓자기, 과대자기, 위축된 자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부모의 양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제안했다. 사회학자들은 초월적 자기, 경험적 자기, 상호작용하는 자기 등의 개념을 만들어 우리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늘 변형된다는 사실을 연구했다.
주체적 삶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이야기되어도 현실에서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를 만난다. 그 말을 이기적인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나르시시즘의 극치라 평가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 문학 작품 속의 주체에 대한 멋진 논문을 써낸 사람조차 자신의 생각보다는 외부 권력자의 의도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박사과정에 있는 한 연구자는 내가 짧은 강연을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자 잘못된 영어 발음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건 틀리면 안돼."
그의 내면에 있는 초자아, 권위자, 인정받고 싶은 대상의 목소리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내면 목소리, 외부 권위자, 세상의 시선에 자기를 맞추며 살아간다. 그들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이들은 가끔 자기가 따르는 외부 기준을 내게도 요구한다. 내가 공책이나 스커트 등 소유물을 필요한 형태로 변형시킬 때면 곁에서 꼭 한마디한다. 그것을 자르면 어떻게 해? 회사를 그만둘 때도, 긴 여행을 떠날 때도 많은 이들이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심지어 먹기 싫은 음식을 거절할 때도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대놓고 거절하냐? 그때마다 나는 다만 내 삶의 주도권을 공책이나 음식에게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타인과 사회에 해가 되지 않고, 공동체의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고, 법에 저촉되는 반사회적 행동이 아닌 이상 나는 무엇이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타인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나,
만족감은 없고 공허함만 커져
일그러진 거울을 깨는 용기와
기성세대의 관용을 기대한다"
유아기에는 부모의 사랑과 격려,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아이의 주체성을 기른다. 사춘기에 심리적으로 부모를 떠나면서 반항할 때도 부모의 보복하지 않는 인내가 자녀의 주체성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청년기에 애착 대상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도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지지해줄 때 그 경험에서 배우며 강한 자아를 만들어간다. 중년기 초입에 들어서면 주체적 삶을 위해 또 한 번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 스승이나 어른으로 모셨던 권력자와 헤어지면서 스스로 진정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의 언어로 표현되는 삶의 내용들이다.
내면에 주체성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공허감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럴수록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입장을 바꾸고,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직에 소속되기 위해 개성을 마모시킨다. 자기를 잃은 현대인들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적 개인에서 일탈의 군중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은 외부 기준과 요구에 자기를 맞추느라 일그러진 거울 같은 자아를 갖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당사자의 용기일 것이다. 내면에서 심판하는 초자아 목소리, 외부에서 심판하는 권위자의 힘,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이다. 그보다 중요한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젊은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관용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생각이 옳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 자녀에게 양육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 경쟁심이나 시기심 없이 젊은이들을 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의견을 마음 열고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학생이 교사를 가르친다"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이다. "백살이 돼도 백일 된 손주한테 배울 게 있어." 우리 할머니 말씀이다.
며칠 전 문학상 심사가 있었다. 그 상은 연배와 성별이 고루 섞인 심사위원 아홉 명이 저마다 한 표씩 행사하는 심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선배 작가가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상을 심사하던 초기에 깨달은 게 하나 있지. 문단 최고 권위자인 한 선생이 훌륭하다고 극찬한 작품에 대해 후배들이 한 표도 주지 않는 걸 목격했어. 그 선생 직계 제자도 있어 몇 표는 나올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지. 그리고 생각했어. 꼰대가 되어서는 안되겠구나."
그분이 칠순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비밀을 엿본 듯했다.
<김형경 | 소설가>
* 경향신문,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50125214508740
- 편집하는 말,
무려 일주일 가까이를 일기 한번 없이 지낸 셈일까?... 그랬구나,
음...
이제 내 미래를 결정짓게 될 시간... 불과 일주일,
일주일 후면 내 모든 미래는 새 시작점에서 리셋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그 출발점의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채, 다만 굳건한 마음가짐과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는 절박감 뿐...
모름지기 출발이라 함은 늘 그 어떤 토대 위에서부터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그 토대가 없었다는 거... 전략/기획이니 하는 것들이 왜 부질없는가를
이번 일을 겪으며 이토록 절절히 깨닫게 되는 건가? 아니면, 여전히 내 무능이요 노력의 부족일 뿐인가?
가장 부러워할만한, 남들이 모두 가겠다고 아우성치는 프로젝트에서 순순히 제 발로 걸어나오는 심경은
사실 그리 썩 편치만은 못하다. 아니, 나중에 혹시라도 크게 후회될 일은 아닐까... 덜컥 겁부터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순전히 내 자신만의 몫인 법. 그 후회 또한 궁극적 주체는 결국 나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며 내가 주인이어야 할 일들...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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