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오늘의 편지,
[손호철의 정치시평] 10월은 아직도 잔인한 달인가
"4월은 잔인한 달." 잘 알려져 있듯이,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만물이 살아나는 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4월이 아니라 5월과 6월이 잔인한 달이다. 5월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5·16쿠데타와 비극적인 1980년 광주학살이, 6월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월도 잔인한 달에 추가할 만하다. 전후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유신이 선포된 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의 잔인한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분개하면서 검찰이 인터넷 업체들과 협조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대적인 사이버 망명이 일어나는가 하면 '신유신', '사이버 유신'에 대한 우려가 야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유신'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에 쓴소리를 토해낸다. 이들은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걸핏하면 이렇게 '과거'와 싸우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유신'이라는 표현이 선동문구일 뿐 과장된 것이고 과거와 싸우는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유신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논쟁적이지만, 민주주의가 사방에서 확연하게 후퇴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주목할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평가기관인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이다. 매우 보수적이지만 거의 유일무이하게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점수를 내온 이 기관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권리'라는 두 기준을 가지고 최저 7등급에서 최고 1등급까지 나누어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시절 6등급이었다가 김영삼 정부 들어 전체적으로 2등급으로 올라갔고, 노무현 정부 들어 정치적 자유가 1등급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의 자유에 대한 규제 때문에 시민권은 2등급에 머물러 1등급을 맞은 대만보다도 뒤처진 1.5등급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정치적 자유가 다시 2등급으로 추락해 전체적으로 2등급으로 후퇴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언론과 인터넷의 자유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이에 대해 '자유', '부분적 자유', '부자유'라는 세 단계로 평가하는데 우리나라는 둘 다 '부분적으로만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우리 언론의 자유는 2010년까지는 자유로운 단계였는데 이후 부분적 자유로 추락했고 점점 떨어져 올해는 창피하게도 사모아, 가나 등보다 낮은 70위를 기록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평가로 정평이 나 있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의 자유는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44등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50등, 올해는 57등으로 추락했다. 인터넷의 자유는 더 한심하다. 기자회는 북한 등 12개국을 '인터넷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다음 단계로 '인터넷 감시국'으로 14개국을 지목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가 터키, 이집트 등과 함께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 평가는 이번 사이버 실시간 감시 소동 이전의 평가이니 올해 평가는 더 추락할 것이 뻔하다. 현실이 이러하건만,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지국장 기소조치와 관련해, 외교부 대변인이 외신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현장이 아니고 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니 할 말이 없다. 국제사회를 상대하는 정부의 대변인이 우리 언론의 자유가 국제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해 이렇게 무지해서야 말이 되는가?
현재 우리 민주주의의 후퇴는 심각하다. 다만 이를 유신이라고 부를 정도인지는 논쟁적이다. 또 1970년대의 유신과 달리 '신유신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지 회의적이다. 그런 만큼 더 우려되는 바가 크다면 크다. 게다가 유신 시절보다 오히려 후퇴한 중요한 현실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야당이다. 그러기에 묻지 않을 수 없다. 10월은 아직도 우리에게 잔인한 달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series/112690/newsview?newsId=20141019204806258&seriesId=112690
- 편집하는 말,
가뜩이나 불만스러운 '경제민주화'는커녕 '정치민주화'조차 발목이 잡힌 채 후진국의 그늘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동시대인의 변명이자 궤변이자 항거는 오직 글로써만 가능할 법인가? 모르겠다,
사회도 회사도, 또 가정이나 국가 모두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담론에 대해 제대로 고찰해보지도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 세대는 과연 얼마나 많은 토론과 자비와 배려를 배워야 할까... 막막한 길 앞,
파주다. 을씨년스럽게도 날씨는 얼추 겨울을 인사할 차례인가 보다. 삭막한 풍경... 이 속에서 내가 꿈꾸는 그곳은?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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