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칠월, 방학을 앞둔 계절
오늘의 편지,
[삶의 창] 성적을 매기면서 / 권보드래
[한겨레] 학기말이 닥치면 성적 처리가 큰일이다. 시험과 보고서에 조별 발표까지 점수 매긴 파일을 두고 궁싯거린다. 시험 비중이 너무 높은 듯해 0.6을 곱해 계산해 본다. 출석 보너스가 지나친 것 같아 0.5로 보정해 본다. 이리저리 매만져도 결과가 비슷해야 안심이 된다. 석차 1에서 10까지는 변동 없고, 보자… 20선은 좀 움직이지만 한두 자리 내외네. 평균치로 잡자. 조교, 고생했다.
학교엔 대개 성적이란 게 있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에 대학도 달라진 지 오래다. 학기말마다 성적 항의 내지 읍소 때문에 골치를 앓노라는 교수가 적지 않다. 대기업 월급쟁이를 표준적 모델로 삼는 우리 사회에서 학점의 위력은 한창 기세등등하다. 어지간한 기업의 이른바 합격자 스펙을 보면 3점대 중·후반 학점이 평균이고, 아예 지원 자격을 3.0 이상으로 제한한 경우도 꽤 있단다. 학생들로선 학점에 전전긍긍하지 않기 어려운 셈이다.
대학에 상대평가가 강제된 건 10년 안짝인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학점당 추천비율'이라는 게 생겼다. 극소수 A와 대다수 B의 성적 분포를 선호하는 나로선 영 학교의 추천비율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투덜대기만 하는 와중에 성적 재량권은 날로 줄어들었다. 내 원칙을 고집하려면 사유서를 써야 하는 시기가 닥치더니 곧 그도 불가능해졌다.
늘 겪는 일이지만 이번 학기에도 상위 10% 안팎, 중위 70% 내외, 그 밖에 약간 명이 남는 성적 분포도가 나온다. 학생들이 학점에 신경 쓰게 되면서 중위권이 더 두터워졌다. 소수점 차이로 촘촘하게 다붙은 그 사이를 억지로 떼내 A와 B와 C로 분할하는 게 기술이다. 어쩔 수 없이 몇 명을 C로 잘라내고 보면 A라도 후하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로 학점당 추천비율에 근접한 분포도를 그리게 된다. 최대한 점수가 벌어진 지점을 찾아 학점 구간을 나누는 게 그나마 예의다. 이 사이가 2점이네. 여기서 가르도록 하자.
이런 작업을 하면서 부조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100년밖에 안 된 대학제도에 이렇게 완벽하게 순응하고 있다는 것도 부조리하고, 학점에 이렇듯 골몰해야 한다는 건 더더구나 부조리하다. 비교적 학점에 자유로웠던 시절을 기억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학점 2.0으로도 취업이 무난했었는데 말이다. 대학만 무사히 마치면 세상살이는 비교적 안전했다. 대학생 사이 그토록 열렬했던 정치·사회적 관심도 이 안전판 위에서의 사정이었던 듯 생각될 정도다.
아이엠에프(IMF) 체제 이후, '민족과 사회'를 걱정해야 했던 젊은이들은 갑자기 저마다의 생존을 향해 돌려세워졌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됐기 때문이라지만 그것은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었다. 성장을 멈춘다 해서 다른 삶을 모색하지 못할 리 없으련만, 아이엠에프 때 가난에 대한 공포를 순식간에 상기해 버린 우리는 다시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왜 뛰는지 자문하기를 두려워하며, 점점 가난해지는 취업률을 애써 외면하면서.
탁월성에는 표시가 필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학점폐지론자도 아니다. 그러나 상대평가의 강제 속에서 학점을 매기다 보면 그 불신과 경쟁의 낌새에 무참해지곤 한다. 학생들 얼굴이 어른거린다. C를 받은 아무개야, D를 줄 수밖에 없었던 아무개야. 다만 너희가 의연하기를 바랄 뿐이다. 뛰는 대신 꾸준히 걸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밖을 상상하는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널뛰는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비켜서 보자꾸나. 천천히 생각해 볼 테니 너희 또한 생각해다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 미디어다음, http://media.daum.net/editorial/newsview?newsid=20140704184008006
편집하는 말,
네덜란드가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늦잠에서 깨면서야 겨우 들었다. 아르헨티나 경기만
보고는 곧장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 가장 좋아하는 팀이지만, 생중계를 보기 쉽지 않은 이번
월드컵이구나...
모처럼 도서관을 다녀왔다. 쟝르별로 책들을 빌려 집에 돌아오는 길, 자전거를 수리했으며...
어느덧 주말 이틀이 저물고, 이제는 또 새로운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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