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현과 뮤직파워 - 아름다운 강산
※ 더 예전 버전의 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YXq1IaIx-9A
※ 1972년?... 일단은, http://www.youtube.com/watch?v=1QxHeeSfbS0&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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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고색창연한 이름도 어언 이 노래를 들은지가 무려 30년이 지난 기억인데,
그 시절들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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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INEM
- Green Day
- 듀스 DEUX
- 서태지
- Nine Inch Nails
- Radiohead
- Nirvana
- Dr. Dre
- 장필순
- Public Enemy
- Metallica
- 김광석
- R.E.M.
- U2
- 들국화
- 이선희
- 프린스 Prince
- Madonna
- Michael Jackson
- 조동진
- 산울림
- Sex Pistols
- Whitney Houston
- Bruce Springsteen
- Bob Marley
- 한대수
- 송창식
- Elton John
- Joni Mitchell
- Led Zeppelin
- The Who
- Bob Dylan
- The Doors
- 신중현
우선 시계추를 먼 과거로 돌려본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나는 이런저런 노래들을 카피하며 뮤지션으로서의 미래를 꿈꿨더랬다. 어느 순간 외국 곡들을 연주하는 것에 지친 나는 한국대중음악 쪽에서 롤 모델을 찾기로 하고 주변에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헌데 조언을 던진 사람들이 짜고 친 고스톱도 아닐 것인데, 모조리 단 한 곡을 반드시 연주해보라며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신중현과 엽전들이 남긴 불후의 록 절품(絶品) ‘미인’이었다.
- 앨범명
- 1집 신중현과 엽전들 (재판)
- 아티스트 및 발매일
- 신중현과 엽전들 1974.08.25
- 타이틀곡
- 미인
- 앨범설명
-
신중현과 엽전들 1집 (1974) 한국 록역사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 물론 개인 마다 그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1973년이라는 키워드를 주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 엽전들이 발표한 4장의 앨범은 신중현 고유의 한국적 록사운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만이 진리라고 여겨왔던 나에게 ‘미인’은 거대한 쇼크처럼 다가왔다. 우선 한국적 흥취를 한껏 살린 기타 리프부터가 이전까지 들어왔던 음악들과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나는 재능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기타리스트의 길을 포기했지만, ‘미인’을 처음 퉁겨봤을 때의 그 생생했던 순간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실연자(實演者)가 되는 대신, 음악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나는 본격적으로 신중현의 광맥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한국대중음악계 최초로 (자의든 타의든) ‘사단’을 거느린 명 작곡가였다. 펄 시스터즈('님아')를 시작으로 박인수('봄비'), 김추자('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정화('꽃잎'), 장현('미련')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를 호령한 명품 보이스들이 모두 신중현의 곡을 받아 스타의 지위에 올랐고, 그래서 반드시 음반 재킷에 ‘신중현 작편곡집’이라는 글씨를 인쇄해 시장에 내놓았다. 그래야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를테면 신중현은 1970년대 최강의 흥행보증수표였던 셈이다.
- 아티스트 및 발매일
- 신중현 2009.12.22
- 타이틀곡
- 미인 (1974년작)
- 앨범설명
-
2006년 공식은퇴와 함께 살아있는 록의 거장 신중현의 강렬했던 50년 음악 역사를 집대성한 기념비적 앨범! [신중현 Anthology Part I&II (Normal Edition)] !! 총 9장의 앨범으로 구성된 본작은 인간 신중현의 음악세계는 물론 한국 ..
이 외에 수많은 후배들이 커버한 '빗속의 여인'이나 '커피 한잔' 등도 그의 골든 레퍼토리로 꼽히는 노래들. 여기에 윤수일이 1970년대 후반 발표한 '나나', 김완선의 대표곡 '리듬 속의 그 춤을'도 신중현의 손끝에서 빚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폭넓은 스펙트럼에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그는 당시 한 가닥 한다는 음악 선수들만이 밟을 수 있었던 미8군 무대에서 본토 병사들의 진심 어린 기립박수를 받았던 기타 마스터였다. 실제로 1960년대 당시 미8군들은 ‘We Want Jacky!’(재키는 미8군 당시 신중현 선생의 별명)를 외치며 난리법석을 떨었고, ‘재키를 모르면 미국 놈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퍼졌다고 한다.
그러나 격동의 현대사는 신중현이 순수한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찬가 만들기를 거부하고, 전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아름다운 강산’으로 화답한 것.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널리 알려졌다시피, 국가 차원의 탄압뿐이었다. 후에 이선희가 커버한 버전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이 '사이키델릭 우주'는 점층적으로 소리를 쌓아가는 패턴 속에 10여 분간 듣는 이들의 청각을 휘몰아쳤다. 그리고는 마침내 터져 나오는 빅뱅. 모든 악기가 별무리처럼 쏟아지는 절정부분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라는 수식 외에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다.
이렇게 영광의 화환과 쓰라린 얼룩이 버무림 되어있는 한국 대중음악의 명암을 내달려온 그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신중현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대중음악의 전체 역사와 마주치는 숭고한 순간이 된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해외에서도 이러한 업적들을 인정해 아시아인 중에서는 최초로 펜더기타를 헌정하기도 했다.
- 앨범명
- 1집 아름다운 강산
- 아티스트 및 발매일
- 신중현과 뮤직파워 1980.10.13
- 타이틀곡
- 아름다운 강산
- 앨범설명
-
판매되는 음반은 1997년 재발매반입니다.Vocal-신중현,김문숙,박점미Guitar-신중현Drum-이승환Bass-박태우Key.-김정희Trumpet-이근희A.Sax.-홍성호T.Sax.-한준철신중현..
또 다시 시계추를 2년 전으로 돌려본다. 내가 일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신중현 선생의 세 아들을 초대해 라이브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맏이인 신대철씨에게 지속적으로 출연을 부탁해 성사된 흔치 않은 자리였다. 마치 끌과 정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조각가처럼, 세 아들은 기타와 드럼을 떡 주무르듯 마음껏 요리했다.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일찍 포기하길 잘했구나’라는 기이한 안도감이 들 정도로, 그들의 연주는 차원이 완벽하게 달랐다.
어느 문화 평론가의 말마따나, 세 연주자의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테크닉이나 코드 같은 이론은 무의미했다. 손가락을 광속으로 돌리는 극한의 스피드 연주 역시도 애들 장난일 뿐이었다. 규정집 따위를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연주가 가능함을,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최근 신중현 관련한 음반들이 속속들이 재발매되고 있다. 나 역시도 소장하고 있지 않은 작품들을 하나둘 사 모으며 신중현 음악세계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시나 아직도 신중현과 만나지 못한 음악 팬이 있다면 지금 당장 구매버튼을 클릭하기를 바란다. 평론가가 중신아비는 아닐 것이지만, 신중현의 음악세계는 아직도 더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음악웹진 'IZM'을 거쳐 [오이 뮤직], '강앤뮤직' 등에서 나름 열심히 일했다. 현재는 웹진 '100비트'를 비롯해 방송 출연과 포털 사이트, 지면 원고 등을 통해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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