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노트/철학노트

이제는... 놓아드려야 할 때인가 봅니다......

단테, 2009. 5. 25. 22:35

 

 

 

 

노무현 대통령님께

  

 

......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님을 추모하며 애도의 물결을 이룬 주말도 그렇게 지났습니다...

새로운 한주, 출근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귀도 닫고 지내는 월요일,

 

어젯밤에 문득 철 지난 제 개인적 추억들을 들춰보고픈 생각이 잠시 들었더랬어요...

아마도... 처음 님을 접한 기억은 저 유명한 5공 청문회 때였던가요...... 개인적으로,

소신있고 정의로운 언변을 펼쳤던 청문회 스타들이 유독 많았던 그해였나 봅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의 초선의원이란 참신함 하나만으로도 님에 대한 인상은 깊었었고, 

노무현, 박찬종, 이해찬, 박관용... 모두 그 TV를 통해 듣게 된 이름들이기도 했고요,

나중에는 각자... 서로 다른 정치적 행보와 운명을 걷게 된 이름들이기도 하네요......

 

             

어느덧 세월은 흘러... 1987년의 6월 항쟁이 승리를 거두는 듯하였는데, 자기분열로

결국 정권을 교체하지 못한 아쉬움 역시도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그 두분이, 결국

다음에는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지만, 엄연히 그때 역사를 적어도 5년을 더디게 흐른

빌미를 제공한 셈일 테니까요...... 아무튼, 그 다음에 목도하게 된 님에 대한 인상은

제가 갓 군대를 입대하기 직전인, 5공 청문회의 마지막 자리... 즉 전두환 전 대통령

모두발언이 있던 그 1989년의 12월 끝자락였던 것 같습니다... 허망히 끝난 그 자리,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해 명패를 집어던지고말았던 님의 분노... 그때가 스산한 입대

직전의 마지막 잔상으로 지금도 선연히 남아 있기만 한데... 그리고, 얼마 안되고는

이른바 3당 합당... 신병교육대에서 들었던 1990년 1월 9일의 일이던지요... 절망과

같던 그 역사의 배반은 그리도 무참히 역사의 진보를 짓밟았습니다... 아마도 그때,

님 역시 무기력함으로 울분만을 삼켰었겠는지요......

 

             

복학한 후, 제도권 정당에 신물이 난 마당에 더더욱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던 곳은

다름아닌 <진보진영>이겠지요... 동연 선거를 끝으로 낙향, 1992년 대선을 집에서

지켜본 제게, 백선본을 지지하며 제 지인들도 그곳에 합류했던 그 시절, 여전히 이

나라에서는 희망의 싹수조차 보이질 않던 그 시절...... 그렇게 '문민정부'라는 탈을

쓴 기득권 세력의 재집권이 이루어지던 절망감, 또렷이 기억나는 그때의 좌절감...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된 그해에만 해도, 여전히 전 그 정통성을 믿지 않았더랬지요, 

당시의 시사월간지인 <길>과의 인터뷰에서 소위 운동권 세력들한테 실망을 안겨준

발언을 하기도 했던 게, 여전히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아마도 그때였지 싶네요...

 

문민정부 하에서 제 형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조차 했고, 그 찬겨울에

인덕원에 있던 서울 구치소로 주말마다 형의 옥바라지를 하는 어머니 모습에서 참

많은 참담함을 느꼈던 계절이기도 했더랬습니다...... 그때 저는 글을 쓰고 있었고,

아마도 그때 이후, 더 정진하고 등단이라도 했었다면, 지금은 또 다른 삶,였겠죠...

            

  

아무튼, 사회생활에 입문하여 보낸 몇 안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OECD에도

가입을 했고, 금융실명제 역시 진일보한 측면도 있더랬지만... 여전히... 그 정통성

문제가 쉬이 신뢰를 얻긴 어려운, 아니 그만큼, 너무도 오염된 그들이기도 했는데,

    

IMF가 터진 1997년에서야... 비로소 민심이 움직이더군요, 김대중 후보가 대세가

되고, 정말로 어렵사리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일단 이루어내었었지요... 또 그리고,

2002년의 그 대단했던 역동성은 또 무엇인지요... 지금도 자랑스러운 그 시절, 그

추억... 지금도 그립습니다... 100분 토론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님의 모습, 그리고

다시 제도권 정치의 최전면에 나선 님의 모습... 곧 희망의 계속을 기대케끔도 한

일들이 오롯이 역사에 남아 있지요...... 대통령 아들의 비리, 그리고 김영삼 전직

대통령을 방문한 일들 따위로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던 시절이 곧 시련으로 닥친,

그때마다 솔직히 전 반신반의하며 지냈던 게 생각납니다... 그해 겨울, 드라마틱

이란 말이 절로 와닿는 후보 단일화에의 성공... 그리고 정말로 피말리는 접전과

극적인 대선에서의 승리를 가져왔던 그 힘, 그 승리도 그리울 법한 추억였지요...

 

노무현 후보를 다시 지지함이란... - 사실 이는 정체성을 접어둔 채, '반한나라당'

전선에로 치중한, 어쩌면 "전술적" 측면였기도 해요... - 하지만 어쩜 본심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요즘의 제 사고 역시, 제 일상 역시도 이와 결코 자유롭지 못한,

- 제 어리석음과 순진함이었는지는 몰라도, 전 이념만큼 인격을 믿었었는지요...

 

 

참으로 모처럼 기대를 갖게 만든 참여정부의 출범은, 초기의 대단한 활력에 비해

너무도 잦은 이전투구와 발목잡힘에 시달려야만 했었지요... 집권기간 내내, 소위

조중동과의 전면전으로 인한 시달림... 게다가 2004년의 봄은 탄핵마저 있었지요.

졸지에 저 역시... 대전역 광장에서 마이크조차 잡고 민주주의를 호소하던 2004년,

그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비정규직 등

한시도 시름이 잦을 날 없던 그 시절들은 또 얼마나 초라한 영욕의 굴레들였는지,

그때마다 현 정부를 지지해놓고도 여러번... 님의 독선, 아집 내지 정부의 무능을

탓하고 또 질책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들로 불편하기만 했던 마음이 컸던 기억...

 

결국 조기에 '레임덕'이라는 의도적 언사에도 시달려가며, 참으로 초라하게도 그

말년의 임기를 지루하게 보내야만 했던 게 불과 재작년이던지요...... 설상가상의,

집투기 광풍마저도, ...... 사실상의 결정타였던,

 

대안마저도 부실한 채, 사실 그렇게 허망히 내준 정권였습니다. 유시민의 조기탈락,

손학규 후보마저 밀려난 채 민주당 대선후보는 정동영이라는 잘 안어울리는 분께서

나오셨던 2007년의 대선은 이미 게임을 치뤄보기도 전에 그 승패가 끝났던 일였죠.

지하철의 퇴근길에서 "노무현 개새끼"를 연발하던 아저씨들을 보며, 참으로 "통합",

쉽지 않은 길임을...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내내 꽤 어려울 것 같단 생각,

참으로 많이 해왔고... 또 지금의 생각도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입니다...

 

       

이명박 정부, 그렇게 출범한 이 정부가 벌써 1년이 넘게 흘렀군요... 촛불정국, 작년

내내 세종로에서 노래하며 갈망한 민주주의는, 도리어 훨씬 더 많이 후퇴한 시국...

사그러든 촛불마냥 그렇게 묵묵히, 일상과 가계만을 챙기느라 분주히 여념도 없게

지내게 되면서부터는... 다시 또 뉴스를 멀리한 채 지내온 게 또 올해이기도 합니다.

LeeMan Brothers의 활극이 설상가상으로 연말의 경제마저 꽁꽁 질식시켜버렸던...

그래서 해고의 공포 또는 생계의 위협 속에... 가계를 추스르는 일조차도 버거웠던,

불과 얼마전까지의 일상은... 이렇듯 대부분이, 엇비슷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아예 딴나라인... 그 '강남' 계통 사람들만 빼고는 말이죠,)

            

그러다 불쑥, 님의 스캔들이 터졌지요... 누누히 흘러나오는 얘기들, 그 앞에서 결국

전체가 다 싸그리 "너네도 별 수 없어" 소리를, 그 모욕을 참아가며 저들의 만용 앞에

비애마저 느껴야 했던 이 잔인한 봄... 한숨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버텨온,

그래서 블로그에도 몇줄... 그 한스러운 마음을 써내려가보기조차 했는데도요......

 

           

주말 아침, 아내의 부름에 뭔가 하여 들여다본 TV에 펼쳐진 믿기지 못할 문구들과,

봉하마을 주변의 어이없을 풍경에... 그만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 상태로 머리가 멈춰선 채, 하루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말았더랬지요... 그날 밤,

밤늦게 홀로 소주를 사놓고 그대를 모처럼 추억하였습니다. 눈물이 곧 흐르더군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혹은 어쩜, 일종의 한 <전형>에

대한... 상실감였나요... 마치, 회사에서 자주 쓰는 말, "롤모델"의 하나를 잃은듯한,

           

어제... 가족과 함께 님의 영전을 찾아 대한문을 찾았더랬어요...... 몰려든 인파, 그

속에서 그만 차마 터지지 말아야 할 울음까지도 터뜨리고 말게 되더군요... 마지막

가시는 그 길마저 어찌 이리 초라한 것인지... 왜 하필이면 공권력에 둘러싸인 채로,

제대로 된 한풀이조차도 못하고서 굴욕마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우리

세상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또 우린

도대체 얼마나 힘이 없길래... 하는 헝클어진 맘을 추스를 길, 없었더랬습니다......

울지 말라며 저를 달래는 딸아이한테조차... 아무 변명 못한 채... 부끄럽기만 했던,

 

[사설] '광장의 추모'가 그렇게 두려운가  (한겨레)

 

    

여전히 먹먹한 가슴으로 오늘, 새로운 한주의 첫 일과가 시작되었네요... 점심시간,

밥을 먹다가도 그만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이 굴종의 시대, 정말 더 이상은 참기

힘들기만 한 이 시대... 이제는 정말로, 제대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입술을 깨물며...

               

오늘... 진보신당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동안 등진 채 살아온 제 지난날의 반성, 또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제 입장을 표하고 또 그것에 책임질 나이라, 생각해서요...

물론 제 정치적 입장이 비단 특정 정당의 것만은 아니겠지만, 우선 도와야 할 편을

먼저 돕고 또 선거는 선거 나름대로의 의미와 필요가 생길 테고요, ...... 아무튼요,

 

- 마흔... 벌써 '불혹', 저 역시도 이제, <정치적 실천>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주말에 터진 비보, 부엉이 바위에서 내던져진 그 몸은 비단 님만의 것이 아닌, 이땅

민주화와 그 지난했던 진보의 몇 안되는 발자국마저 다시금 성큼 더 뒤로 후퇴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는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이기도 합니다......

           

다른 숱한 에피소드들을 더 떠올리기에는, 이 사무실의 협소한 공간 역시 너무 좀...

개인적으로는 많이 불편하군요...... 그래서 문맥도 꽤 엉망이고... 이해해주시고요,

......

          

     

어느덧... 놓아드려야 할 때인가 봅니다...... 일상도 다시 전면전으로 치달을 테며, 

애달픈 노래 한곡조 역시 저작권조차에 시달리는 시대... 기억만이라도, 이리라도

함께 묻어두고자 몇자 남겨놓겠습니다...... 살펴... 가시라고... ...... ......

                

님이 부르던 <상록수>... 그리고, 요즘 다시 듣게 되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그 눈물겹게 기억하는 역사의 사진첩에, 이제... 님 역시, 한편의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추억 한장으로, 정중하게 모셔서 남겨두고자 합니다...      

      

고이 가시고요... 부디, 이 풍진 세상 등진 채, 평온한 마음으로 굽어 살피소서, ...

그 기백, 그 양심만큼은, 언제고 후배들한테도 귀감이 될 터이니... 이제, 편히, ...

잠드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