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뉴스레터

2015년 7월 8일 (수)

단테, 2015. 7. 8. 09:24

글 / 환골탈태의 정신... 또는 그 무엇    


- 오늘의 편지, 

    

       

          

[공감] 뼛속까지 바뀌거나 서서히 죽어가거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과 대처 과정을 보면서 한국이 과연 발전한 나라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으로 제법 의젓한 모습을 갖추었지만, 우리의 발전모델을 따르려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만나면 솔직히 창피할 때가 있다. ‘한국이 왜 그런 일을 겪느냐’는 점잖은 질문에 다소 경멸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낀다.

성형수술, 고가의 건강검진 등 상품으로서의 의료는 발전했지만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할 보건의료체계는 후진적이다. 표를 얻기 위한 복지공약은 넘쳐나지만 취약계층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가고 있다. 아이들은 선행학습으로 수학 문제는 잘 풀지만 일상의 삶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성찰적 사회인으로서의 능력은 형편없다. 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메르스의 위세가 약화되면서 예정된 수순에 따라 책임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사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앞뒤 상황을 돌아보면 딱하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복지 위주로 조직된 체계 속에서 재난에 대처하느라 보건복지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익창출 중심으로 조직된 병원 시스템을 가지고 재난에 대처하느라 삼성서울병원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책임은 물어야 하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가 만든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미시간대학 로버트 퀸 교수가 설파한 ‘뼛속까지 바뀌거나 서서히 죽어가거나(deep change or slow death)’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근본적 혁신을 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태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조직변화에 대한 강의에서 자주 인용하는 ‘솔개의 선택’이라는 우화가 있다. 솔개는 최고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40세가 되었을 때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40세가 되면 발톱과 부리, 깃털이 너무 자라 잘 날지도 못하고 사냥도 할 수 없다.

이때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서서히 죽을 날을 기다리거나 잔혹한 갱생의 과정을 밟는 것이다. 갱생을 선택한 솔개는 들짐승이 오지 못하는 높은 곳으로 가서 둥지를 틀고 고행을 시작한다.

먼저 바위에 부리를 쪼아 제거하고 새 부리가 돋게 한다. 이어서 새로 난 부리로 발톱을 하나씩 뽑아내어 새 발톱이 돋게 한다. 다음에는 새 발톱으로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렇게 새로운 발톱과 부리, 깃털을 얻은 솔개는 30년을 더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해온 대로 하면서’ 산다. 그러나 관행적인 삶의 방식대로 했을 때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조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대형 참사와 재난만이 아니라 층간소음 살인이나 잔인한 보복운전 등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지금 우리는 ‘뼛속까지 바뀌거나 서서히 죽어가거나’의 기로에 서 있다. 총체적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가 시스템을 포함한 총체적 탈바꿈은 가능한가? 윈스턴 처칠에 따르면 ‘당초 사회 구조는 우리가 만들지만, 일단 만들어진 구조는 우리를 만든다’.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구조를 변화시킬 권리를 갖고 있고 그 권리를 포기하면 구조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는 쉽지 않다. 강의 중 청중에게 솔개의 우화를 들려주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진지한 반응과 불쾌한 반응이다. 진지한 사람들은 자신이나 조직을 솔개 자체와 동일시하는 이들이고 불쾌해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뽑혀 나갈 부리와 발톱, 깃털과 동일시하는 이들이다. 물론 스스로 뽑혀 나갈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선량한 일반 국민에게도 변화는 두렵다. 변화란 ‘칠흑 같은 미지의 어둠 속으로 벌거벗은 채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뼛속까지 바뀌거나 서서히 죽어가거나’ 선택해야 할 시기가 이미 다가왔다.

<신좌섭 | 서울의대 교수·의학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