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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현대철학의 '좌표읽기' (또 '해답의 과정'?)

단테, 2015. 4. 6. 22:43


- 남경태,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휴머니스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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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집어든다. 철학책, 현대철학만큼은 어떻게든 진도를 뽑아내고픈데... 잘 안되곤 한다, 

제일 먼저 마르크시즘의 현대적 양상들에 관한 짧은 글들을 우선 읽어본다. 그람시와 알튀세르, 다. 

 

학창시절의 맨 마지막을 장식했던 두 인물의 공통점은, 역시 '극복'에 있겠지?... 

내 현재적 시점도 마찬가지일 텐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고,  

  

 

- 저자의 말 그대로 하나의 '좌표읽기' 정도로 딱 그 값어치는 해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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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철학자 수만큼 철학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철학이 몇 가지 계열로 나뉘는 게 보통이었으나 지금은 각각의 철학자마다 고유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만큼 현대의 지성계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교통정리하기도 어렵다... 정형과 무정형,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중간쯤에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수십 년 전의 후설처럼 '학문의 위기'를 부르짖어야 할지, 아니면 언제나 있어왔던 역사적 고비, 경계 선상의 시대로 여겨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더 큰 어려움은 그 판단이 철학자나 사상가만의 몫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예전에는 철학의 문제는 철학자의 문제였고 철학은 철학자의 분야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문학/미술/음악/영화/만화/매체 등등 현대 문화의 모든 쟝르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철학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지적 배경을 등에 업고 전개되고 있다. 지금 시대의 지적 물결은 이제 철학자 사회의 문턱을 넘어 일상생활의 공간 속으로 흘러넘치는 중이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우리로서는 마땅히 그 홍수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 밀려드는 지적 홍수의 정체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적인 난제는 추출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난국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서른한 명의 사상가들에 관해, 그들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비록 그들 각자는 동시대성을 부인할지 몰라도, 그리고 자신의 철학적 내용이 고유한 것이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그들을 읽는 우리에게 더 생산적인 독해는 그들을 동시대성으로 읽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공통성보다 다양성을, 동일성보다 차이를 내세웠지만, 그들을 소화하는 우리는 반대로 다양성보다 공통성을, 차이보다 동일성을 찾아야 한다... 철학 혹은 사상을 사전식으로 공부하거나 핵심어로 요약해서 읽는다는 것은 사실 옳은 방법이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수험 공부를 다시 하는 것 같아 언짢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어떤 사상의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현대의 지적 흐름 속에서 각 사상의 좌표를 찾으려 한다는 점, 또한 이 얄팍한 책만으로 현대사상의 총체를 온전히 이해하리라고 기대하는 독자는 아마 없으리라는 점으로 변명을 삼고자 한다... 끝으로 이 책은 원래 "현대 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로 발간되었던 것을 수정해 재간행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 차례 :: 

    

머리말 현대사상의 길눈 얻기 5 

카를 마르크스: 잉여가치 / 이윤을 낳는 거위 13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의지 / 허구를 버리고 허무로 25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 / 의식의 진짜 주인 36 
페르디낭 드 소쉬르: 기표와 기의 / 언어의 진짜 주인 46 
에드문트 후설: 판단중지 / 진리를 구하는 괄호 58 
블라디미르 레닌: 약한 고리 / 세계대전을 내전으로 70 
카를 구스타프 융: 집단 무의식 / 내 안에 전체가 있다 8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대성 / 절대는 없다 90 
존 메이너드 케인스: 유효수요 / 경제주체의 해체와 대체 102 
가스통 바슐라르: 인식론적 단절 / 단절과 불연속의 과학 112 
죄르지 루카치: 계급의식 / 꿈을 실현하는 계급 123 
마르틴 하이데거: 다자인 / 형이상학의 막다른 골목 133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언어 게임 /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마라 144 
안토니오 그람시: 헤게모니 / 혁명은 영원한 진행 중 155 
자크 라캉: 욕망 / 해 아래 내 것은 없다 166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 자연이 설정한 인식의 한계 178 
페르낭 브로델: 장기 지속 / 아주 깊고 느린 역사 189 
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 / 밝은 계몽의 칙칙한 그림자 200 
장 폴 사르트르: 자유 / 자유의 비극 21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심층구조 / 세계의 중심에서 탈락한 인간 222 
롤랑 바르트: 신화 / 현대의 신화 232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 / 평생 벗을 수 없는 색안경 242 
토머스 쿤: 패러다임 / 과학이 혁명을 만났을 때 254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던 / 작은 것이 아름답다 264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욕망 / 분열증 위에 서 있는 자본주의 275 
미셸 푸코: 지식/권력 / 역사의 숨은 반쪽 286 
장 보드리야르: 시뮬레이션 / 기호를 통해 혁명으로 299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 / 이성에 대한 지순한 사랑 311 
자크 데리다: 해체 / 저자도 독자도 없는 책 321 
피에르 부르디외: 아비튀스 / 매개라는 이름의 줄타기 331 

찾아보기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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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中) 

   

... 천만원대의 모피에서부터 천원짜리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물건들의 가격은 정말 다양하다. 심지어 같은 용도, 같은 종류임에도 가격이 몇배 차이가 나는 물건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물건들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이윤이란 상품의 가격에 덧붙는 거라는 생각이 상식이다. 즉 이윤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다시 말해 상품의 본래 가치 이상의 가격을 매겨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이윤이란 '남는 것'이고 원가에 덧붙는 액수다. 이게 상식이며, 또 관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마르크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윤은 원가에 덧붙는 액수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이윤은 상품을 원가 이상으로 판매하는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판매자인 동시에 구매자다. 따라서 판매자로서 얻는 것은 언제난 구매자로서 잃게 된다... 이것이 전 사회적으로 일반화되면, 판매자로서 얻는 이득의 총액은 구매자로서 잃는 손해의 총액과 같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도대체 이윤은 생겨날 구석이 없다. 그렇다면 이윤은 어디서 발새하는 걸까? 마르크스가 내린 답은 이렇다. 이윤은 상품을 원가 이상으로 판매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원가대로' 판매하는 데서 생긴다. 상식을 뒤엎는 주장인데, 이런 주장이 성립하려면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어야 한다... 

  

... 상품의 최종 소비자에게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가 중요하다... 사용가치가 상품의 더 근원적인 가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다. 사용가치는 상품을 소비해버리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교환가치는 언제나 다른 상품들과의 관련, 교환 비율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교환가치를 그냥 가치라고 줄여서 부른다. 가치의 질적인 측면은 버리고 양적인 측면만 취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다양한 상품들과의 다양한 등식을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상품을 공통된 하나의 표현으로 환원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은 뭘까? 그것은 바로 노동이다... 떻게 노동을 가치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물음도 곤란하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은 개인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 즉 숙련도나 노동의 강도에서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동은 또 무엇으로 잴까?... 바로 시간으로 재면 된다... 그래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의 양이 된다. 이렇게 모든 상품의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환원하고 나면 맨 앞에서 말한 이윤이 생겨나는 비밀을 알 수 있다... 

  

... 임금이라는 댓가를 받는 한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도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우선 먹고살아야 하며, 또 노동력도 기계처럼 낡으므로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활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하는 비용이 된다... 그런데 노동력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상품이다... 그것을 다른 상품처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그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게 된다...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과 그가 가진 노동력의 가치는 서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바로 잉여노동시간이 된다... 이 잉여노동시간에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가 곧 잉여가치다. 그리고 이 잉여가치가 시장에서 판매되어 현실적인 이득이 생기면 그게 바로 이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한 상품에 정해진 이윤을 덧불여 시장에서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게 아니다. 그는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이미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윤은 이미 생산된 상품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생산할 때부터 상품과 함께 생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자본가가 자신의 몫이 되는 이윤을 쪼개 노동자의 임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이 되는 몫은 노동자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품과 동시에 생산된다. 따라서 이윤은 전부 자본가의 것이 된다. 자본가는 그 이윤으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나 도구를 구입하고, 자기 개인이 필요로 하는 몫을 챙기고,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자본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신규 투자를 한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는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다. 즉 잉영가치의 생산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결정적인 동력이다...  

... 가치를 양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또 그것을 노동시간이라는 보편적 척도로 환원함으로써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을 발견했다... 노동자들은 집단적 생산의 흐름 속에 위치해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잉여가치의 존재를 알기 어렵다. 특히 분업화된 현대식 생산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본가들은 대개 이 점을 악용해서 '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임금을 올려주느냐'고 항변하지만 실상은 생산과정 속에 이미 이윤의 원천이 가려져 있을 뿐이다... 

... 마르크스가 가치의 질적 측면보다 양적 측면을 중시한 목적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을 밝히기 위해서였으나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것은 탈현대적 관점의 선구적 모습을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당대 지식인들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천박하게 보일지를 잘 알면서도 굳이 가치의 양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은 이성 중심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였다. 그런 그의 혜안은 그의 시대에는 경제학과 혁명 이론에만 적용되었으나 다음 세기에 이르면 철학의 영역에도 빛을 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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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中) 

 

... 어쩌면 철학에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올바른 정답보다 해답, 즉 필요한 설명인지도 모른다. (진리는 없어도 괜찮지만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필요하니까) 혹은 답 자체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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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 中) 

  

...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에게 더없는 낭보였다. 제국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러시아에서도 혁명이 성공했다면 이제 곧 선진 자본주의 국가, 즉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리라. 그리고 그 혁명은 자본주의를 종식시키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근절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가져다주리라. 그들은 이렇게 믿었다... 

...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라고 규정한 레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히려 전보다 더 풍요를 누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제야 사회주의자들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 그람시는 이 두가지 문제를 하나의 요인으로 해결한다. 즉 러시아와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전혀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이란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는 없지만 서구에는 있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민사회의 전통이다... 시민사회와 대비되는 것은 국가라는 개념이다. 국가가 엔진이라면 시민사회는 브레이크다. 국가는 지배하고 시민사회는 견제한다... 

...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폭력적인 지배 기구다. 국가란 자본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도구이며, 심하게 말하면 자본계급의 결정을 정책으로 실행하는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유럽의 역사에서 시민사회가 맡아온 역할을 중시한 그람시는 국가를 그렇게만 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외곽 참호일 뿐이고 그 배후에는 시민사회라는 강력한 요새와 진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할 경우에는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밖으로 나와 그 위기를 극복한다. 이처럼 국가와 시민사회는 대립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 여기서 그람시는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국가는 물론 자본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도구이지만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게 아니라 헤게모니를 이용한 한층 세련된 방식으로 지배한다. 헤게모니 역시 기본적으로 '지배'라는 뜻이지만 물리적 폭력이나 강제력을 통한 지배와는 다르다... 헤게모니란 폭력을 통한 단순무식한 지배와 더불어 지적/도덕적 지배가 함께 얽힌 지배 방식을 가리킨다... 

... 지배계급이 그렇듯 세련된 지배의 양식을 취한다면 그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마찬가지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헤게모니의 개념을 국가나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혁명 세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계급의 지배 전략이 거칠고 단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련되고 복합적인 것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혁명 전략 역시 그렇게 구사해야 한다... 볼셰비키식의 과격하고 급진적인 정치혁명이나 폭력혁명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 혁명은 화끈한 게 결코 아니다. 혁명은 일순간에 전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새 사회를 우지끈뚝딱 건설하는 과정이 아니라 매우 느리고 완만하고 끈끈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람시가 혁명을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도 헤게모니는 중요할 것이다. 혁명이 진행되고 있을 때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대항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진지전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초반에 승부를 보는 단기전은 물리력이 우세한 것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지만, 오래 버텨야 하는 장기전이라면 물리력보다는 아군의 정신 무장이 더 중요할 터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혁명 세력에 대한 이념 교육과 정치 교육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교육을 담당할 교사가 바로 지식인(인텔리겐치아)이다... 

... 일찍이 마르크스는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고, 사회가 생산을 전반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에 고기 잡으러 가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평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사냥꾼이나 어부, 목자나 평론가와 같은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감동적이면서도 다분히 감상적이 이야기다... 마르크스의 혁명이 감상적이라면 그람시의 혁명은 어찌 보면 공허하다. 혁명은 장기전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의식을 전환시키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전이라면 어디까지냐는 점이다. 도대체 혁명은 언제 완성되는 걸까? 만약 완성이 있다면 그때까지는 오로지 이념 무장만 충실히 해야 하는 걸까?... 그는 마르크스처럼 혁명 이후의 사회를 추상적으로꿈꾸지 않았으며, 레닌 같으면 혁명의 준비 고정이라고 할 만한 것을 혁명 자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혁명은 목적을 가정하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람시는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혁명, 목적을 배제한 과정으로서의 혁명, 내일을 생각하기 이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을 구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레닌과 그람시, 둘 중 누가 더 마르크스를 충실히 계승한 혁명론을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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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中) 

 

... 서구 사상사에서 알튀세르의 위치는 이론적으로는 1960년대에 큰 방향을 얻었던 구조주의의 맥락에 있으며, 실천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그는 정신분석학의 라캉, 언어학의 소쉬르,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와 더불어 속된 말로 '구조주의 4인방'이라고 불리며,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중의와 구조주의를 결합하려 한 사람이다... 우선 알튀세르의 의도를 따라가보자. 그가 굳이 구조주의를 이용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려 했던 의도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마라크스주의자들은 경험적 자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생활 현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구조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관측 가능한 사실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2) 역사적 연구를 중시하는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역사주의는 경험적 일반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3)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보이는 환원론적 경제 결정론을 거부한다. 물론 경제는 궁극적인 결정 요인이지만 정치, 문화 등의 상부구조적 측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4) 마르크스주의를 인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대해 거부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행위의 주체라기보다 상징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행위자들이 사회 계급을 구성한다고 보았다면,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그것을 다만 객관적으로 상호 적대적인 '관계'로 본다... 

... "마르크스는 1845년에 이르러 역사와 정치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인간에서 구하는 모든 이론과 격렬한 작별을 고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극적인 변화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첫째, 마르크스는 기존의 인간주의적 개념들을 사회구성체, 상부구조, 생산관계, 생산력 등과 같은 새로이 발명한 과학적 개념들로 대체했다. 둘째, 마르크스는 인간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 즉 왜곡된 관념 체계로 규정했다... 이런 이유에서 알튀세르는 1845년 이전을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시대'라 부르고 이후를 '과학 시대'로 규정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라고 부르짖는다... 초기의 소박한 인간주의적 마르크스가 아니라 후기의 과학적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 전통적인 해석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를 과학과 대비되는 허위의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 

 

... 여기서 알튀세르가 더 이상 사고를 진행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말 때문이었다.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유물론의 기본 원칙에 충실히 따른다면 참된 인식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존재, 사회적 위치에 근거해 사고하며 행동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누구도 그 색안경을 벗을 수 없다면 진리란 과연 가능할까?... 

... 1968년 격렬했던 프랑스 5월 혁명을 겪으면서 알튀세르는 자신의 철학적 관심을 극적으로전환한다... 이제부터는 '과학'을 버리고 오히려 '이데올로기'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리하여 알튀세르는 근대적 합리성에 기초한 이분법적 도식을 폐기하고 과학 대신 이데올로기 분석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제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란 과거와 같은 허위의식이 아니다. 아니, 이데올로기는 허위든 뭐든 우선 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의식이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한다. 그리고 이제 이데올로기를 언제나/이미 있는 것, 기원도 역사도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물론 현실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해주는 진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은폐하는 허위의식도 아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누구나 당연시하고 넘어가는 무의식과 같은 것이며, 모든 사고와 행위에 이미 들어와 있는 어떤 것이다... 

...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허위의식에서 현실에 대한 표상으로 옮기면서 전통 철학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하지만 그는 전자의 근거도, 후자의 근거도 모두 마르크스를 끈질기게 독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그렇다면 그가 마르크스의 사상적 전환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한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그 자신의 지적 편력에도 적용되어야 할 듯싶다. 그러나 그러려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독해한 것과 같은 농도와 끈기로 우리 후학들이 알튀세르를 독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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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저자
남경태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2-05-2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20세기 위대한 사상가들의 핵심 개념을 한눈에 읽는다 마르크스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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